Butterfly Kiss 21

사토미팔견전 / 里見八犬伝

2008/01/04 13:36 영화일기/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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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83, 深作欣二 / 角川映画 / 里見八犬伝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

우리들의 조부는 “사토미 요시자네(里見義)”공을 도와 “히키타 사다카네(田定包)”의 성에 쳐들어갔다. 당시, “사다카네”는 희대의 요부 “타마즈사(玉梓)”의 주색에 빠져 주지육림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때문에 “요시자네”공은 빈곤에 고통 받고 있던 백성들의 바람에 따라 “사다카네”토벌군을 일으켰던 것이다. “사다카네”는 결국 목을 내놓았지만, 요부 “타마즈사”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다 무서운 저주의 말을 토해 내었다.

“네 이놈 요시자네 자자손손의 후대 까지도 사토미 집안을 저주하겠다.”

그 저주 때문인지 곧 사토미성은 이웃 나라의 군사에 포위 되어 함락 일보 직전까지 몰리게 되었고 힘에 부친 “요시자네”공은 키우고 있던 개 “야쓰후사(八房)”에게 적장의 목을 가져온다면 “후세공주(伏)”를 아내로 주겠다고 푸념했다.

“아바마마 야쓰후사는 보통 개가 아닙니다!”

그날 밤 “야쓰후사”는 훌륭하게 적장의 목을 가져왔고 싸움은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푸념으로 이야기 했던 빈말이라도 군주인 자의 말은 거짓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고 “후세공주”는 “야쓰후사”에게 몸을 맡기고 성을 떠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틀림없는 “타마즈사”의 저주아닌가?”

개에게 공주를 떠나 보내고 면목이 없었던 우리들의 조부는 철포대를 이끌고 산속으로 “야쓰후사”를 쫓아갔다. 하지만 철포대의 탄환은 “야쓰후사”를 감싼 “후세공주”의 몸을 관통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때 공주의 몸에서는 여덟 개의 구슬이 빛과 함께 튀어 나왔고 공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슬퍼하지 마세요. 백 년 후, 이 빛나는 구슬은 여덟 명의 검사가 되어 사토미(里見)의 공주를 도와 타마즈사의 저주를 쳐부술 것입니다. 나는 이를 위해 태어나 이를 위해 죽을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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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83, 深作欣二 / 角川映画 / 里見八犬伝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2년 정도 전 이었던 고교생 시절이었고 당시에는 불법복제 비디오 카세트가 일반화되어 있던 시절이라, 동네 단골 비디오 대여점 점장의 추천으로 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짬바라영화(일본의 칼싸움 영화)라면 “구로자와 아키라”감독의 <요짐보>나 <7인의 사무라이>를 생각하고 있던 나는 <사토미팔견전(里見八犬)>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란한 액션과 특수촬영, 영어가사로 된 록음악 주제가 등, 그 때까지의 시대극과는 다른 신선한 아이디어와 풍성한 이야기가 대단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때의 그 비디오 카세트는 대여점으로 회수되었고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나도록 <사토미팔견전>을 추억하며 지냈습니다. 런닝 타임이 140분 가량이었기 때문에 120분향의 비디오 카세트에는 오프닝 일부와 엔딩이 모두 잘려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조악한 불법 비디오였음에도 불구 하고 번역이 대단히 뛰어 났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다가 지난 ’98년 경 일본의 유료 위성채널 JSB-3 WOWOW에서 시청자의 인기 투표로 구성된 일련의 영화들을 방영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다시 <사토미팔견전>을 보고 불타 올라 버렸습니다. 이 번에는 첫 시청 시에 보지 못했던 오프닝과 엔딩이 고스란히 수록된 온전한 릴리즈였기에 더욱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결국 일본 HMV에서 DVD를 구입하게 되었고 구입 후 사실상 시청하지 않고 모셔만 두었던 것을 얼마전 DVD플레이어의 1080i 업스케일링 화면을 테스트 하면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중간에 도저히 끊을 수 없어 결국 마지막까지 완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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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83, 深作欣二 / 角川映画 / 里見八犬伝

이야기는 이 글의 처음에 적어놓은 전설의 마지막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요부 “타마즈사”는 “사토미 요시자네”에게 불타, 죽임을 당한 후, 악령 “미타마”(悪霊霊様)”의 힘을 빌어 그녀와 함께 불타 죽은 아들 “히키타 모토후지(田素藤)”와 함께 요괴로 환생하고 사토미 성을 함락한 뒤 그 일족을 참살하지만 막내 딸 “시즈공주(静姫)”를 놓치고 맙니다. “시즈”는 “타마즈사/모토후지”의 어둠의 군사들의 눈을 피해 숙부인 “무사시(武)”집안으로 피신하려 하지만 겹겹 둘러 싸인 포위망을 쉽게 벗어 나지 못하지요. 탈주 도중 시녀와 가신을 모두 잃고 홀로 방황하던 공주는 전설의 구슬을 가진 일련의 사무라이들과 만나게 되고 “야쓰후사”의 힘을 가진 구슬의 전사들은 “모토후지”와 “타마즈사”를 쓰러뜨리고 세상을 다시 평온하게 만들게 된다는 구성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토미팔견전>의 매력은 권선징악의 액션 판타지로서의 구성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시즈공주”를 봉양하는 8명의 검사들, 그들의 얄궂은 삶이 어찌 보면 “타마즈사”와 “모토후지”를 쳐부수고 사토미의 공주를 구한다는 큰 줄기 속에 스며들어 이야기를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8검사의 리더격으로 궁극의 무공을 자랑하는 “이누야마 토오세쯔(犬山道節)”는 살이 썩어 들어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문둥이이며 폭약전문가 “이누무라 다이카쿠(犬村大角)”는 노모를 “모토후지”의 가신인 요괴 “후나무시(船)”에게 죽임을 당했고, 유일한 여자검사인 “이누사카 케노(犬坂毛野)”는 고아로 자라 살인을 업으로 삼고 결국에는 “모토후지”의 가신인 “요노스케(妖之介)”와 사랑에 빠져 최후를 같이 하게 되지요. “이누카와 소우스케(犬川助)”와 “이누타 코분고(犬田小文吾)는 장님과 그 흉측한 외모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나 동굴에서 생활하였고, “이누카이 켄파치(犬飼現八)”는 “타마즈사/모토후지”의 어둠의 군단의 장수였으며, “이누즈카 시노(犬塚信乃)는 배다른 여동생을 사랑했기에 가족을 몰살하고 결국 요괴가 된 여동생 “하마지(浜路)”와 함께 최후를 맞이 합니다. 8검사 중 유일하게 살아 남게 되는 “이누에 신베이(犬江親兵衛)”는 “타마즈사”의 아들이자 “모토후지”의 동생으로 환생되었다는 과거를 가지고 “시즈공주”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재미있는 것이 8검사의 이름에는 모두 개를 의미하는 이누(犬)자가 들어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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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83, 深作欣二 / 角川映画 / 里見八犬伝

원작은 에도 시대 후기(1814년~1842년)에 “쿄쿠테이 바킨(曲亭馬琴)”이 중국의 수호전에서 원안을 얻어 총 98권, 106책으로 저술한 “난소우사토미핫켄덴(南里見八犬)”을 “카마다 토시오(鎌田敏夫)”가 번안한 (이문열 삼국지 정도의 개념으로 보면 될 듯), <신사토미팔견전(新里見八犬)>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원작과는 거리감이 꽤 있는 이색작으로 생각됩니다. 감독은 우리에게는 <배틀로얄>로 잘 알려진 “후카사쿠 킨지(深作欣二)”, 주인공 “시즈공주”역은 <세라복과 기관총>의 히로인 “야쿠시마루 히로코(師丸ひろ子)”, “이누야마 토오세쯔”역에는 <킬빌>에서 명검을 만들어 내는 “핫토리 한조”를 연기했던 “치바 신이치(千葉一)”, “시즈공주”와 사랑에 빠지는 “이누에 신베이”역에는 <무극>에서 “장동건”과 공연했던 “사나다 히로유키()”가 출연하는 등의 호화 캐스팅을 보여줍니다.

최근에는 도쿄방송 개국기념으로 지난 2006년 TV시리즈로도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이걸 보신 분들이 꽤 있으신 듯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도 몇 번 이나 영상화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나는 ’83년 공개된 “후카사쿠 킨지”판의 <사토미 팔견전>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습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도 다시 찾아 볼 수 밖에 없었던 영화, <사토미팔견전>은 나만의 영원한 명작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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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4 13:36 2008/01/0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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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 機動戦士ガンダム

2007/12/27 13:51 영화일기/D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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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79~1982, 富野喜幸 / 日本サンライズ / 機動戦士ガンダム


<기동전사 건담>이 처음 부터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우주전함 야마토>, <은하철도 999>가 큰 인기를 얻고 있던 시절이었고, <기동전사 건담>이 처음 방영되었던 '79년도에는 시청율이 5% 정도로 낮아 총 52화로 기획된 시리즈가 43회로 단축되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시차방영국인 아오모리TV에서는 26화에서 시청율 저조로 중단 되어 버리는 창피한 경력도 가지고 있습니다.(물론 재방영 때 다시 전방되기는 하였지만) 나는 이 첫 방영 당시 몇 편을 TV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로봇 아니메라 하면 <마징가 Z>나 <그렌다이저>류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레귤러 멤버가 많고 복잡한 인간관계와 그저 소모품 정도로만 느껴지는 로봇 메카의 존재가 흥미롭지 않게 느껴진 것이 나 뿐만은 아니었겠지요.

첫 방영 당시 키 방송국은 "나고야 TV", 칸토우지역에서는 아사히 TV를 통해 방영이 되었습니다. 기획 당시에는 <15소년 표류기>에 <우주전함 야마토>를 비벼 놓은 듯한 느낌의 전투기물 <프리덤 파이터>로 시작되었지만 언제 부터인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SF 소설 <우주의 전사(스타쉽 투루퍼스)>에 등장하는 강화복물로 진행되었고 이 시점의 가제는 <건 보이>였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당시에 일본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영화배우 "찰슨 브론슨"의 "으으~음 맨담!"이라는 남성용 화장품 CM의 카피라이트가  더해저 "건담"이란 제목이 되었다는 웃지 못할 뒷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당연히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방영 당시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 처럼 보였으나, 사실 상 침묵하고 있는 소수 팬들의 몰입도는 혁명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결국 폭발한 것이 '81년 3월 공개된 <기동전사 건담>의 첫번 째 극장판으로 TV시리즈 1화~13화까지를 재편집한 후 약간의 신작컷트를 추가한 것에 제목도 TV시리즈와 동일한 <기동전사 건담>이었습니다. 이 후 공개된 2편과 3편이 주제가를 제목에 차용한 점 때문에 이 첫 번째 극장판을 <기동전사 건담 모래의 십자가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극장판 공개보다 1개월 앞선 '81년 2월 신주쿠(新宿)에서는 <아니메 신세기선언>이라 불리우는 이벤트가 개최되어 약 1만 5천명에 달하는 건담팬들이 그 위용을 과시했고, 그 중 "샤아"와 "라라아"의 (요즘은 코스프레란 말로 더욱 잘 알려진) 복장을 한 두 명의 남여 팬이 원작자인 "토미노 유조키(富野喜幸)(현재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로 개명)"에게 선언문을 낭독했는데, 이 두 사람은 후일 결혼해 부부가 되었고, 그 중 "샤아"역활의 남성은 만화가 "나가노 마모루(永野護)"(FSS의 원작자)로, "라라아"역활의 여성은 "카와무라 마리아(川村万梨阿)(성우, 건버스터의 융 프로이드 역;현재에는 <아니메 신세기선언>에 참가를 부끄러워 하는 것 같음)"으로 지금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세월이 흘러, 이제는 <기동전사 건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 졌고, 개중에는 건담교로 대표되는 종교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제와서야 퍼스트 건담으로 지칭되는 원전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였을까 자문해 본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을 듯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기동전사 건담>은 애니메이션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아이콘일 수 밖에 없기에, 그 아이콘은 프라모델 제조업체인 "반다이"와 "완구데미"가 만들어 낸 철저한 상업적 표상일 수 밖에 없기에 더욱 그러한 듯 합니다. 나 자신도 최신의 건담 시리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하지 못합니다. 어느덧, 건담이라는 시대정신에 세대간의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에 시작이 있듯이, <기동전사 건담>에 기대어 보는 나의 추억은 그 아련한 첫 발자욱에 머물러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 시작은 이러하였지만 그 끝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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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7 13:51 2007/12/2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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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 銀河鉄道 999

2007/12/18 19:43 영화일기/DVD

개요

내가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를 처음 본 것은 어린이 월간지 “새소년”에 연재되었던 “혜성도서관”편이 아니었을까 기억해 봅니다. 당시에는 일본만화를 배껴 그리는 것이 공공연한 시절이었고 배역명도 “메텔”과 “데쓰로”(혹은 한국명 철이)가 아닌 “헬렌”과 “캔디”였지요. 그러던 것이 MBC의 특별편성으로 스페셜 <너는 전사처럼 살아갈 수 있는가?>가 방영되고 반응이 좋았는지 정규 방송에 편성되어 일요일 아침 2편 1화 편집으로 방영되는 동안 <은하철도 999>에 매료되어 버렸습니다. 당시에는 방송 시간이 교회시간과 중복이 되어 많은 에피소드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 뒤 재방영 때는 단 한편도 볼 수 없었기에 일본에서 출시된 레이저 디스크 박스를 구입해 보기 시작한 것이 우여 곡절(참으로 우여 곡절) 끝에 8년이나 지난 올 12월에 그 끝을 볼 수 있었고요. 최종화를 시청하면서 이대로는... 이대로는... 그냥 지나갈 수 없겠다는 기분과 이제 나도 <은하철도 999>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을 때가 온 것이 아닐까 하는 객기에 전 113화의 에피소드 가운데 11편을 추려서 간략하게 요약해 봅니다. 이제는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그 때의 소년은 중년의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서도 말입니다.


슬픈 추억도 언젠가 그리워 질 때가 있어, 보아 두었으면 좋았었는데 라고 생각 할 때가...
1. 出のバラ-ド
출발의 발라드 / 제 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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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78~1981, 松本零士 / 東映動画 / 銀河鉄道999



“국민 여러분 행복 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모 좌익 정당 대표의 인사말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적 이 있습니다. ’6,7,80년 대 고도성장기를 거치며 숫자의 경제, 규모의 경제, 힘의 경제에 익숙해 진 우리는 ’90년 대 후반 금융위기를 거치며 자본이란 두 글자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 보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한가? 살림살이가 나아졌는가? 에 대한 질문에 평범한 대한민국의 노동자계급(딱히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아닌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 혹은 육체적 노동을 자본가에게 기여하고 그 대가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평범한 봉급생활자)인 나는 자신 있게 “예”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 규모와 국민 총생산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고 하)지만 실제 생활에 느끼는 경제적 중압감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 변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는 우리나라도 이제 본격적인 (미국식)자본주의의 후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 아닐 까 합니다. 자본이 집중되고 그 재분배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은 증가하는데, 생산수단(토지나 주택 혹은 사회간접자본 등)의 가치는 폭등하여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기대치가 현저히 떨어져 버린 그런 사회로의 진입 말입니다.

<은하철도999>의 무대가 되는 서기 2221년의 지구는 이러한 양극화가 정점에 달한 극단적인 사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산수단=자본을 가진 자에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장미 빛 세상으로 그들은 온도와 기후가 자동으로 조정되는 초근대적 도시 “메가로 폴리스”에 살며 소모 부속만 교환하고 정비한다면 1,000년이고 2,000년이고 살아갈 수 있는 기계의 몸으로 갈아타고 영겁의 시간을 쾌락과 환락 속에 생활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도시에서 쫓겨나 과중한 육체노동에 시달리며 하루 끼니를 연명하기 힘든 그런 생활을 계속하는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지금과는 달리 소상공인 혹은 자신이 자본가 계급으로 착각하는 (멍청한)노동자의 모습 조차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살풍경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척박한 세상에도 꿈은 있습니다. 태양계 넘어 안드로메다 은하에는 기계의 몸을 거저 주는 별이 있어(자본가 계급으로의 신분 상승), 이 별에 가려면 1년에 한번 메가로 폴리스 중앙역에 도착하는 은하초특급 열차 999호를 타면 된다는 소문이 그 꿈의 시작이지요. 이 열차를 타기 위해 아니면 혹시나 하는 희망에 부풀어 가난한 사람들이 역 주변으로 모여들었고 그 중에는 살을 애는 듯한 추위에도 거적 한 장 밖에는 몸에 두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빈곤한 모자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권력=자본의 실력가인 기계백작의 인간사냥에 희생당하는 엄마(호시노 카나에;星野加奈江, 시리즈에서는 본명이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케이분샤(勁文社)간의 은하철도999 대백과에 의한 정의)의 모습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밤비>에서 보여지는 사슴사냥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엄마를 잃고 동사하기 직전의 소년(호시노 데쓰로;星野鉄郎)을 구한 것은 수수께끼의 여인 “메텔(メ-テル;Maetel)”,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 것도 이야기 하지 않는 여인에게 같이 여행한다는 조건으로 무기한 무제한의 은하철도 999 의 정기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집음기를 통해 들려오는 엄마의 원수 기계백작의 축하연에 눈이 뒤집힌 “데쓰로”는 한 자루의 소총을 가진 체 기계백작의 집으로 향합니다.

“역에 가기 전에 기계백작의 집에 들리겠어, 그게 너와 함께 여행하는 나의 조건이야…”

기계 백작일당(원작 만화에서는 사냥한 엄마를 박제로 만들어 벽을 장식해 놓은)을 살해한 “데쓰로”는 기계 폴리스로부터 수배당하고 바로 그날 밤, 메가로 폴리스 중앙역의 99번 플랫폼에 정차된 999호를 타게 됩니다. 가난한 자들의 꿈 999호는 SL(Steam Locomotive;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가진 일본제 C62형으로 넘버 50, 즉 C6250은 TV판에서만 등장하는 묘한 숫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C62는 모두 49대가 제작되었고, 만화원작 및 극장판에서는 C6248로 이는 실제 이 넘버플레이트를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C6250의 TV판 열차에 더욱 애착이 갑니다. C62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수 백 년 뒤에 우주 공간 궤도를 달리는 은하열차로 제작된 (실제 하지 않는)50번째 C62란 설정은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TV판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원작만화와 극장판에서 “메텔”과 “데쓰로”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존재 합니다.

“슬픈 추억도 그리워 질 때 가 있어, 보아 두었으면 좋았었는데, 라고 생각할 때가...”

내가 은하철도 999 전 시리즈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이 말의 의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보다 정확하게 번역하자면 죽은 시인의 모임)>에 등장해 한 때 유행했던 라틴어 “Carpe Diem”(오늘 모든 것을 걸어라.)라는 말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끝없는 우주는 무법의 황야. 어둠 속에 삐뚤어진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희망에 빛나는 별을 더럽히는 자는 누구냐? “데쓰로“여, 분노의 총을 뽑아라!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혜성도서관>에 정차합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
2. 彗星書館
혜성도서관 / 제 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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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78~1981, 松本零士 / 東映動画 / 銀河鉄道999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도구의 인간? 사회의 인간? 아니면 <은하철도 999>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본의 인간? 그 누구에게나 본능은 존재하고 얄팍한 사회규범이나 법률, 보다 기본적인 이성의 휘장을 걷어 내면 약한 것은 잡아 먹히고 강한 것은 잡아 먹는, 살아 남을 수 있는 것들 만 살아 남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세상이 펼쳐 집니다. 제 아무리 인류가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사상의 체계를 확립했다고 할 지 언정, 살아 남기 위해서 혹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알고리즘은 이러한 본능이란 운영체제 위에 프로그래밍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 6 화 <혜성도서관>은 제 4 화 <대도적 안타레스>와 교묘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겠느냐? 꼬마야 맞기 전에 쏘는 거야, 상대가 눈물을 흘려도 필요할 때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쏘는 거야. 이것이야 말로 우주에서 살아 남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지.”

“데쓰로”의 총을 손질해 주며 우주라는 미개척지를 여행하는 소년에게 충고하던 “안타레스”의 모습에서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은 절판되어 지구에서도 구할 수 없는 만화책이 다량 보관되어 있는 혜성도서관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악덕의사와 공모하여 여행객에게 상처를 입히는 총잡이의 모습이 아니라, “메텔”과 “데쓰로”로 변장한 채 999호에 탑승했다가 냉혹한 차장에게 발각되어 열차 밖으로 내던져 지는 모자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적자는 살아남고 부적자는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무엇, 그것은 본능을 사회화, 조직화하고 시스템 안에 녹여 놓은 것은 아닐까, 총이 아닌 법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논리는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으니까요.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그곳은 은하철도의 분기점, 그곳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헤어진다. 그곳에는 인간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그곳은 인생의 분기점. 다음회의 은하철도999는 <트레이더 분기점(전편)>에 정차합니다. / 늙고 병든 아버지를 위해, 행복을 바라는 어머니를 위해 슬픈 여인의 생명의 꽃은 그저 한결 같은 결실을 바란다.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그것이 속임수 일지라도...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트레이더 분기점(후편)>에 정차합니다.


룸펜 프롤레타리아의 빗나간 혁명
3. トレ-ダ-分岐点
트레이더 분기점 / 제 9, 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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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78~1981, 松本零士 / 東映動画 / 銀河鉄道999


룸펜 프롤레타리아, 혹자는 룸펜이 우리말 “놈팽이”에서 온 것이 아니냐는 장난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롬펜이란 두 글자가 그리 장난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세상에 닳아갈수록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롬펜의 존재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노동자계급의 최하층으로, 거의 일을 하지 않고 일 할 의사도 없으며 일정한 거주지도 없이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 매춘, 범죄 등으로 그날 그날 먹고 사는 계층, 노동의욕을 상실하였기 때문에 실업자와도 구별되며 이미 프롤레타리아트에 소속된다고 볼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소멸되지 않는 이상 사회 저변 어딘가에서 계속 생존해 나갈 것으로 기대되는 룸펜,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앵갤스”가 <공산주의 선언>을 발표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공산주의는 경제 이론적 관점에서 접근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혹은 우리의 부모님 세대, 어쩌면 우리 자식 세대까지, 공산주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지주를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성난 노동자의 모습>으로 결국 우리 자신 조차 노동자 혹은 소상공인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겠지요. 근대 공산주의 국가 생성 과정에서 반복 되어졌던 이러한 파시즘적 행태에 가장 많이 이용 당한 것이 바로 이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로 혁명이란 그럴 듯 한 이름으로 일하지 않고도 자본가를 약탈 함으로 배를 채우려고 한 룸펜의 이상향이 엄밀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와는 구별되어야 마땅하지만 서도 말입니다.

트레이더 분기점은 수많은 우주열차의 환승역으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노선이 하나의 점에 집중된 활기 넘치고 왁자지껄한 별입니다. 이곳에는 은하철도 주식회사의 여행경비로 부족함 없이 여행하는 여행객과 그때 그때 일해 번 돈으로 3등 입석열차로 여행하며 끼니도 제대로 때울 수 없는 여행자들이 뒤섞여 있어 가장 극명하게 여행 양극화(?)의 현실을 경험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돈이 없어 라면집(트레이더 분기점의 라면집 주인은 이 만화의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입니다.)의 쓰레기통을 뒤지던 여인에게 라면 한 그릇을 동정한 것이 발단이 되어 서로 라면을 사달라며 몰려든 부랑자들 때문에 곤경을 겪은 “데쓰로”의 모습은 제 72 화 <17억 6천 500백만 명의 구걸 별>(원작 만화의 제목은 <17억 6천 5백만 명의 룸펜 별>)에서 다시 한번 반복적으로 보여 집니다.

룸펜이 나 같은 노동자에게 가혹한 것은 그들의 극빈과 나태가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분발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의지를 꺾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며 그러한 룸펜의 빗나간 혁명이 가지고 온 세상이 어떻게 몰락 했는가에 대한 반성마저도 귀찮은 듯, 똑 같은 모습의 혁명을 바라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운명의 화석화 가스가 젊은 연인의 사랑을 영원히 갈라 놓는다. 하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지켜나간다. 불러도 대답 없는 아름다운 소녀를, 불러도 대답 없는 화석의 연인을,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화석의 전사(전편)>에 정차합니다. / 전사여, 화석화 가스가 들이닥친다. 너의 인생에 결단의 때가 왔다. 전사여, 행복은 연인과 함께 화석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혼자서라도 살아 남아야 하는 것인가?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화석의 전사(후편)>에 정차합니다.


매판자본에 의한 자원약탈 혹은 성의 상품화
4. 化石の
화석의 전사 / 제 12, 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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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생산지 시에라리온은 1991년부터 11년 동안 정부군과 반군이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처절한 살육전을 벌인 현장입니다. 이곳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는 유럽의 유명 보석상에게 판매되어 가공되고 아름답고 고귀한 보석의 모습으로 수많은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지요. 하지만 이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냉혹한 진실은 살육과 착취 그리고 이를 방관하고 방조하는 매판자본(혹은 예속자본)의 얽히고 섥힌 거대한 탐욕 덩어리에 지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자본은 (자본 그 자체만을 놓고 볼 때)이유나 명분을 묻지 않습니다. 그저 자본의 증식 그 자체로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밀렵으로 얻은 호랑이 가죽이나 뼈, 멸종위기의 희귀동물들이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어린아이의 손목을 잘라내는 잔인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 자본의 관점에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정상적인 행위일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자본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소비 함으로서 증식하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세상의 기본 생리이기 때문이지요.

<화석의 전사>는 이러한 제 3자 개입 자본 이른바, 매판자본 혹은 예속자본이 더 큰 자본으로 이동하기 위한 상품의 생산(확보)에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에 대한 단상을 제공합니다. 화석화 가스구름이 행성을 초토화 시키고 사랑하는 여인 마저 화석으로 변해 버린 후, 화석이 되어 버린 연인을 지키기 위해 폐허나 다름 없는 별에 남아 생활하는 “화석전사”는 자신의 고향 별에서 화석을 훔쳐 파는 “화석도둑”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합니다. 분노에 가득 찬 그는 화석에 손대는 모든 이를 일도양단해 버리며, “화석도둑”으로 오인 받은 “데쓰로”가 영광의 상처를 얻은 곳이 이 별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육체의 흔적이 온전하게 보전된 화석전사의 연인을 강탈하기 위해 벌어지는 “화석도둑”과 “화석전사”와의 사투의 결말이 결국 화석으로나마 영원히 연인의 곁에 남고 싶었던 한 남자의 소박한 꿈이었다는 것에 가슴 아파하며 언젠가 다시 찾아올 매판자본의 그림자로부터 그들이 온전할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에 착찹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반딧불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사는 별, 인간의 아름다움은 몸이 빛나는 정도로 태어날 때 결정 되어진다고 한다. 어떤 사람의 눈에도 “플라이야”의 마음 속에 빛나는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다.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반딧불의 거리>에 정차 합니다.


혈통주의에 입각한 시장 기회박탈
5. 螢の街
반딧불의 거리 / 제 1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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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반(四半)...
“마쓰모토 레이지” 만화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단어를 볼 때 마다 가슴 속에 끓어 오르는 젊은 피와 패기 넘치는 인생들의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4조반(다다미 4장 반짜리 하꼬방, 우리 방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두 평 조금 넘는 쪽방)하숙에 살며 가진 것은 몸뚱이뿐, 번듯한 학벌이나 부유한 가정환경도 가지지 못하고 온갖 굳은 일을 마다 하지 않으면서도 한 끼 식사를 마련할 걱정에 몸부림 치는 청춘들, 청운의 꿈을 갖고 언젠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며 그 비좁고 냄새 나는 하숙에서 살아남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나 자신도 마음가짐을 고쳐 먹게 됩니다.

은하철도 999의 10번 째 정차역 “마리코의 반딧불(理子の螢)”에서 만날 수 있는 사조반아가씨 “플라이야(フライヤ)”는 그 몸뚱이마저도 온전치 못합니다. 첫 번째, 몹쓸 폐병에 걸려 변변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육체 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의 빨래를 해주며 살아가고 있음.) 두 번째, 이 별 사람들 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신체적 특징(어두워 지면 몸이 반딧불처럼 빛남.)마저도 만족하지 못한, 몸에서 나는 빛이 아름답지 못하기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수 도 없는 최하층 빈민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태어나면서 결정된 신체적 특성으로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외모의 누추함이 그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는 웃지 못할 반딧불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웃기지도 않는 부조리를 우리는 항상 목격하고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세습, 종교인들의 세습, 정치인들의 세습, 쉽게 말하자면 부모 잘 만난 덕에 힘들이지 않고 그들만의 제국을 영겁으로 이어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말 입니다. “마쓰모토 레이지”는 <밧딧불의 거리>를 통해 이러한 부조리를 인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효율적이지 못한 운용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혈통에 따른 기회박탈의 사회,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시장 차별의 사회, 아울러 자신이 성골이 된 듯 착각하는 (멍청한)노동자 집단의 사회는 언제까지 계속 될 런지요...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아무리 눈에 띄지 않더라도, 한 개의 나사가 빠져버리면 우주의 조화도 무너져버린다. 우주의 움직임도 멈추어 버린다. 얼굴을 들어라! 한 개의 나사, 가슴을 펴라! 한 개의 나사,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우라트레스의 나사산>에 정차합니다.


산업화 사회의 자화상, 우주의 <모던 타임즈>
6. ウラトレスのネジ山
우라트레스의 나사산 / 제 3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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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복잡하게 짜 여진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각자 맡은 바 역할 속 에 한치의 실수도 없는 정교한 업무 처리를 요구 받고 있지요.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고도화된 산업화 사회는 그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우리의 삶과 함께 숨쉬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산업화 사회의 문제점이 지적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산업화 사회의 시작과 함께였습니다. “프리츠 랑”의 <메트로 폴리스>나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보여준 인간성 상실과 테크놀로지 지상(至上)의 사회 시스템은 이제 우주로 뻗어나가 은하철도 999의 26번째 정차역인 “혹성 우라트레스”에 이르게 됩니다.

이곳은 전 우주에서 사용되는 나사를 생산하는 별, 이곳의 하루는 나사못을 만드는 공장의 힘찬 움직임으로 시작해 그 움직임의 멈춤으로 끝을 맺습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만들어 내는 나사못은 산을 이루고 빈틈없는 품질의 규격품 나사는 숙달된 공원들의 정교한 실력으로 그 품질을 인정 받습니다. 나사못 산이 무너져 내려 만나게 된 이곳의 소녀 “라센(ラセン)”은 평생 동안 한가지 규격만의 나사만을 만들어 온 공장의 직원으로 개인의 창의력이나 특성이 전혀 존중되지 않은 체 별의 이해관계에 의한 나사 생산에 회의를 느끼고 일탈을 꿈꿉니다. “데쓰로”의 부탁으로 999호에 사용되는 “라센”이 만들어 보지 못한 규격의 나사를 만들게 된 그녀는 제 아무리 공간 궤도를 달리는 첨단 열차라도 작은 나사 하나에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를 깨달은 채 다시 나사를 만들어가지요.

제 아무리 생산성이 높고 성장이 좋은 사회일지라도 그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관료들이 주도하는 체제나 조직의 효율성이 아닌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아닐까? 이런 소박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것에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기계의 몸을 가지고도 수동적으로 착취당할 수 밖에 없었던 소녀는 현대 산업화 사회의 희생양인 동시에 미래의 인본주의 사회로의 하나의 작은 희망의 불꽃은 아니었을까? 그저 그렇게 생각해 봅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그곳은 금색의 별, 사람의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도금의 별, 사람의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허영에 뒤 덮혀 있다.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플레이티드 시티의 마녀(전편)>에 정차 합니다. / 사회가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인간이 본능을 위한 것이라면, 소년이여, 허영의 본능을 부수어라. 그 때가 되면 반드시 너의 사회는 진실의 색으로 빛날 것이다. 다음회의 은하철도999는 <플레이티드 시티의 마녀(후편)>에 정차합니다.


표면에 증착된 배금주의
7. プレ-テッド.シティの魔女
플레이티드 시티(도금도시)의 마녀 / 제 34,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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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인터넷 상에서 “된장녀”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사실은 나도 이 “된장녀”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릅니다. 한국어판 위키피디아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고가의 명품을 즐기는 여성들 중,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다른 사람(애인, 부모 등)에게 빌붙는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 그러나 이 본래의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의미가 계속 확대 재생산되어, 현재는 주로 남성들이 생각하는 모든 부정적인 여성상들을 싸잡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어 있다.”라는 것을 보고 그저 어림잡아 봅니다. 물론 남성들 중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이 주위에서 종종 목격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의 자기 표현이 남성들 보다는 조금 더 강한 면이 있어 “된장남(아쉽게도 “된장남”에 대한 정의는 한국어판 위키피디아에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보다는 “된장녀”에 관련된 일련의 해프닝이 더욱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내가 중학생 시절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언제부터 인가 “기차표”, “범표”, “말표” 등의 운동화가 사라지고 “나이키”, “아식스”, “프로스펙스” 등의 당시로서는 생소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한 마켓팅과 디자인을 선보인 브랜드들이 출현해 일대 붐을 일구어 냈습니다. 이제서야 돌이켜 보건데 “세계화(Global Capitalism;자본의 세계화)”가 드디어 한국의 서민들에게 인식되어 지기 시작한 것이 이런 다국적 기업들의 공격적 마케팅 때문은 아니었나 합니다. 이제는 “나이키 쇽스”나 “아디다스 파워플렉스”같은 것들 한 두 켤레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다지 자랑할 만한 일도 되지 못하지만 당시에는 대단했었지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 여자분들 수영복 패션이 몇 번인가 바뀌고 나서부터 “명품”이란 단어가 들려 오기 시작했습니다. 고가의 의류나 신발, 장신구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아졌고 이런 분들의 커뮤니티에서 어설프게 내 물건 자랑했다가 망신 당하기 쉽다는 그런 위기감(?) 혹은 두려움 마저 느껴집니다. 사람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 보다 좋은 물건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자랑하고픈 것, 나도 길거리에서 할인에 흥정에 몇 푼 주고 썩다리 핸드폰이라도 하나 새로 장만하게 되면 여러 사람들에게 부러운 시선 받는 것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까, “마쓰모토 레이지”는 모든 것이 금으로 도금된 별의 이야기를 은하철도 999의 기나긴 여정 속에 살짝 끼어놓았습니다.

끼니를 때우기 힘들었던 시절을 지나 이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력을 가지게 되고 그 경제력(자본)이 증식을 거듭하면서 이제는 인간의 외모까지도 자본에 의해 그 수준이 정해지기 까지 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살아가며 도금도시의 마녀가 사는 별의 이야기가 그다지 유쾌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나”라는 속물의 이율배반적 생태가 어떤 형식으로든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시애틀에 열광하지 않고, DKNY를 입고 “뉴요커”가 된 것 같은 그런 감흥은 느껴 보지 못했습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철창 없는 감옥에서 슬픈 노예들이 싸운다. 싸우는 것이야 말로 살아남는 것, 죽이는 것이야 말로 살아남는 것. 라이플 클레네이드는 지옥의 전장, 라이플 클레네이드는 잔학의 무대.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영구전투실험실(전편)>에 정차 합니다. /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너의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너의 용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의 황야에서 평화 꽃이 피기 까지, 노예의 대지에 자유의 바람이 불어 오기까지. 다음 회의 은하철도 999는 <영구전투실험실(후편)>에 정차합니다.


연예막장의 검투사들…
8. 永久実験
영구전투실험실 / 제 47, 4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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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글래디에이터>를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검투사”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겠지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사람이나 야생동물, 범죄자들과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았던 직업적인 파이터를 말합니다. 영화에서 보여진 것처럼 모든 검투사들이 다 노예 출신은 아니지만 실제로 노예가 여흥을 위해 검투사로 사용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지금은 “K-1”이나 “프라이드” 류의 이종격투기가 어찌 보면 과거에 행해 졌던 검투 행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혹성 <라이플 클레네이드>는 진짜 전쟁을 보면서 식사를 즐기는 관광지로 다른 혹성에서 데려 온 “컴뱃 몰모트”들을 사용해 전쟁을 연출하며 관광객들은 이 실감나는 광경을 감상하며 최고급 식사를 제공받습니다. 하지만 두꺼운 방탄 유리 너머의 세상은 너무나도 참혹하여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들이 매일 같이 죽임 당하고 관광객들을 흥분 시키기 위한 대규모 군사작전이 진행되며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됩니다. 이런 참혹한 현실을 벗어 나기 위해 반란을 꾀했던 젊은 병사들의 피와 땀, 그리고 이러한 시도마저도 상품화 시켜버린 가공할 관광도시의 쇼 비즈니스 사업의 계략은 <영구전투실험실>이란, 에피소드에 걸 맞는 이름을 제공합니다. 과거 “김○삼” 정권 시절 12.12 군사 반란 사건에 대해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지요?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쿠데타의 결과는 너무나 잔혹하기에 그 애절함이 더합니다.

史の始まりから人間はう. 物語の中のいは、血湧き肉躍るしいものだ. 人は子供のころから映や本でそれを見ながら、しく育ってきた. しかし、本物の戦争は、それとは裏腹に血とが流れ、しく墓標が立ちぶだけだ...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인간은 싸움을 시작했다. 이야기로 듣는 싸움은 피가 끓고 살이 뛰는 재미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나 책을 통해 전쟁을 보고 즐긴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피와 눈물이 흐르고, 허무한 무덤만이 늘어 갈 뿐이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소년시절, 사람들은 모두 머나먼 하늘을 향해 희망의 시선을 보낸다. 어딘가엔 반드시 파랑새가 살고 있다고, 하지만 발 밑의 파랑새를 알지 못한다.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대사조반혹성의 환상(전편)>에 정차합니다. / 희망의 파랑새. 찾아도 찾을 수 없네. 유치한 꿈에서 깨어날 때, 소년은 이별을 알린다. 은하를 가로지르는 우주열차에게, 젊은 날의 환영에게,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대사조반혹성의 환상(후편)>에 정차합니다.


벽장의 빤쓰 법칙이 우주를 여행하는 소년에게 미치는 영향
9. 大四半惑星の幻想
대사조반혹성의 환상 / 제 60, 6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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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다치 후토시(足立太)”와 “오오야마 노봇타(大山昇太)”는 동일인물임을 밝히며 시작합니다.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마쓰모토 레이지”는 누구보다도 긴 무명시절을 경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향인 규수에서 만화가로서 청운의 꿈을 안고 19세에 상경(그것도 은하철도 999의 SL인 C62를 타고), 주로 소녀만화(우리식 표현으로는 순정만화)를 그리며 도쿄시 분쿄구 혼고의 4조반짜리 하숙에서 전전긍긍하던 그가 만화가 데뷔로부터 18년이 흐른 뒤에야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그의 출세작이 된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주전함 야마토>라던지<은하철도 999>등의 SF만화가 아닌 자신의 하숙 경험을 토대로 그려낸 극화 <사나이 오이동(男おいどん)>이었습니다. “재주없고, 많이먹고, 사람과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無芸大食人畜無害)”을 신조로 살아가는 규수 출신의 젊은이 “오오야마 노봇타”가 살아가는 누추한 하숙 “하숙관”의 이야기는 그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와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극단적인 빈곤의 표현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게 되지요.(<사나이 오이동>과 그 전작인 <원조대사조반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한번 기회를 가지고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4조반 하숙에 “메텔”과 “데쓰로”가 찾아 옵니다. 그 별의 이름은 “내일의 별”...

은하철도의 존재가 절대적인 비밀에 부쳐진 “내일의 별”에서 “메텔”과 “데쓰로”는 은하철도의 패스와 여행자금을 모두 도둑맞게 됩니다. 결국, 패스의 재발행을 거부 당한 일행은 몇 푼 남지 않은 돈으로 부동산을 찾게 되고, “하숙관”이란 이름의 쓰러져가는 하숙에 방을 잡게 되지요. 이틀간의 정차 시간 동안 패스를 찾지 못하면 영원히 이 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운명, “메텔”은 어째서인지 여행을 그만 두고 이곳에서 “데쓰로”와 살아가는 것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입니다. 완전히 알거지가 된 “메텔”과 “데쓰로”는 이제 끼니 걱정에 몸부림 칩니다. 그들의 옆방에는 “하숙관”에 가장 오래 투숙하고 있는, 만화가를 꿈꾸는 젊은이 “아다치 후토시”("오오야마 노봇타”와 동일인물, 이 관계는 다음에 <사나이 오이동>에서 다시 설명 하겠습니다.)는 “데쓰로”에게 빈곤에서 살아남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 줍니다. 자신의 단골 라면집 “코우라쿠엔(紅園;<사나이 오이동>의 팬이라면 은하철도 999에 홍락원이 등장하는 순간 박수라도 쳤겠지요.)”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선해 주기도 하고, 이불 한 채 없는 방에서 벽장에 가득한 사각팬티를 덮어 주기도 합니다. 가진 건 불알 두쪽 뿐, 재산도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이 불쌍한 청춘은 그래도 넉넉한 마음 가짐으로 언젠가는 일생일대의 대작을 그려내고야 말겠다는 야심찬 꿈에 부풀어 살아갑니다.

“남자는 말이야 몇 일 굶는다고, 얼음 바닥에 팬티바람에 잔다고 해서 그리 쉽게 죽지 않아. 내 일생은 길 테니까, 서두르지마, 길은 보이게 되어 있어. ”

“일거리는 좀 찾았수? 얼굴을 보니 오래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자, 이걸 가지고 가구랴, 계란밖에 없는 죽이지만 어려운 건 피차 일반이지 뭐, 그런데 좋겠수, 아가씨는 젊고 이쁘고, 나두 젊은 때는 여러 가지 꿈이 있었지만 설마 일생을 하숙집 할머니로 늙을 줄을 몰랐지.”

오이동의 벽장의 빤쓰법칙(押入れにサルマタの法則)이나 하숙관 할머니(진정 인정 넘치는)의 정겨운 모습은 4조반이라는 어두운 생활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 까지 합니다. 결국 무엇이었을까요? 대사조반혹성… 어렵지만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별… 거칠지만 인정있고 패기있는 젊은이들의 별, “데쓰로”는 그 별을 평생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기타는 울고 있다. 부서진 남자들을 꿈을, 기타는 그리워한다. 불타오르는 남자들의 추억을. 헤비멜다에 부는 바람은 남자가 흘리는 눈물,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시간성의 해적(전편)>에 정차합니다. / 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지 못한다. 과거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곳에는 그저 추억의 바람이 불 뿐이다. 다음 회의 은하철도 999는 <시간성의 해적(중편)>에 정차합니다. / 배신당한 것을 알아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영원의 시간의 흐름 속에 추억의 눈물을 남기고 나의 사랑은 스쳐 지나간다.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시간성의 해적(후편)>에 정차합니다.


해적의 이상한 사랑 혹은: 내 어찌 근심을 멈추고 해적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까? / Pirates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Pirates.
10. 時間城の海賊
시간성의 해적 / 제 79, 80, 8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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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78~1981, 松本零士 / 東映動画 / 銀河鉄道999


1. <은하철도 999>전편을 통해 유일하게 3회 구성으로 이루어진 스펙터클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습니다.

2. <은하철도 999>의 매니아를 자칭하는 어떤 자는 <시간성의 해적>에 등장하는 몇몇 단서(원작자마저도 그 의미를 명쾌하게 알고 설정한 것이 아닌 것 같은)를 통해 마치 자신이 은철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권위적인 허세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3. 나는 <시간성의 해적>이 <은하철도 999> TV에피소드의 정점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통쾌한 활극 액션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 “사나이 오이동”, “퀸 에메랄다스” 그리고 “오오야마 도치로”의 어머니에 이어 레이지버스 스타시스템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캡틴 하록”이 <시간성의 해적>편에서 “데쓰로”를 찾아 옵니다.

5. “캡틴 하록”은 <시간성의 해적>에서 자신의 명대사의 절반 정도를 읇조립니다. 하지만 이 대사는 대부분 <사나이 오이동>에 먼저 등장합니다.(“남자는 질 줄 알면서도 가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죽는 다는 걸 알면서도 싸우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여기 있는 당신들은 가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했다. 그래서 여기 와서 여자의 노래나 듣고 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소년을 보내줘라. 그리고 격려해 줘라.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은가?”)

6. 가짜 하록을 사랑한 여인 “레류즈”는 제 7, 8화 <중력 밑바닥의 무덤>편에 등장하는 시간을 조정하는 마녀 “류즈”의 언니입니다.

7. <시간성의 해적>의 정차역, 혹성 헤비멜다를 기점으로 999호는 은하철도 지구 관리국의 통제를 벗어나 안드로메다 관리국의 관할에 들어갑니다. 드디어 안드로메다 은하로의 진입인 것입니다.

다음편 예고(次週予告)
희망에 빛나는 별의 바다를 건너, 꿈을 감춘 하늘의 어둠을 뚫고 999호의 기적이 운다. 이제 소년시절의 여행이 끝난다. 데쓰로여, 너의 인생의 기적이 울린다.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청춘의 환영, 안녕 999(전편)>에 정차합니다. / 메텔, 당신은 다시 돌아가는가? 소년시절의 꿈속으로, 안녕 메텔, 안녕 999, 안녕 소년시절의 꿈. 다음회의 은하철도 999는 종점 <청춘의 환영, 안녕 999(후편)>에 도착합니다.


대단원, 그리고 소년은 어른이 되었다.
11. 春の幻影 さらば999
청춘의 환영 안녕 999 / 제 112, 1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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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78~1981, 松本零士 / 東映動画 / 銀河鉄道999


최종회의 종착역은 TV시리즈, 극장판, 원작 만화가 서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종착역에 도착한 극장판의 경우 “혹성 메텔”, 두번째로 종착역에 도착한 TV시리즈의 경우 “혹성 프로메슘”, 가장 마지막에 종착역에 도착한 원작 만화는 “혹성 대안드로메다”로 그 종착역이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기계의 몸(영원한 생명)을 포기한 데쓰로, 여왕 프로메슘의 죽음, 기계화 제국의 멸망이란 핵심적인 내용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종착역 바로 전 역인 혹성 박쥐(땅에 사는 들짐승, 하늘을 나는 날짐승 사이를 방황하는 박쥐의 이야기를 다룬 이솝 우화에서 온 이름으로 생각됩니다.)에서 종착역 별을 바라보면서도 기계의 몸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데쓰로”는 기계화 제국의 수도 혹성 프로메슘의 모습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환상에 방황하며, 메텔 역시 기계화 제국의 여왕이자 자신의 어머니 “프로메슘(1000년 여왕의 “유키노 야요이”로 추정)”과 반 기계화 제국을 주장하는 (이름도 아이러니하게도)”닥터 반(1000년 여왕의 “아마모리 하지메”로 추정)” 사이에 방황하다 결국 기계제국의 인재로서의 자격을 거부한 “데쓰로”의 처형을 명한 “프로메슘”에게 반기를 들게 됩니다.

이 과정은 폭력적으로 묘사되며 결국 기계화 제국은 멸망하게 되지요. 구사일생으로 종착역을 빠져 나온 “메텔”과 “데쓰로”는 혹성 박쥐에서 그 운명적인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데쓰로, 결국 이별의 날이 오고야 말았어, 네가 혼자 일어서서 살아 갈 수 있을 때, 그 때가 이별의 순간임을 알고 있었지, 언젠가는 반드시 이 날이 올 것을 각오하고 고통과 슬픔으로 운명 지어진 여행을 계속해 왔어, 이제 나는 다른 소년을 미래로 안내하기 위해 새로운 여행을 떠나, 이제 두 번 다시 너와 만날 수 없겠지, 나는 너와의 추억을 가슴에 묻고 영원한 여행을 계속 하겠어, 안녕 데쓰로, 언제까지나 건강하길...”

<은하철도 999> 최종회, 메텔의 편지에서...


“데쓰로”를 태우고 지구를 향하는 대은하본선 은하 초특급 999호와 “메텔”과 수수께끼의 소년을 태운 외은하본선 행선지 불명의 특별 열차 777호는 서로 반대의 철로를 달려 멀어지고 맙니다. 그리고는 113화, 매 회의 마지막에 굵직한 목소리로 애절한 에필로그를 낭독하던 그 나레이션이 흘러 나오지요.

人は言う、999は少年の心の中を走っている列車だっと...
사람들은 말한다, 999는 소년의 마음속을 달리는 열차라고...

鉄郎はふっと思う鉄郎の旅ははじめから鉄郎一人の旅ではなかったのだろうかなと
데쓰로는 문득 깨달는다.  데쓰로의 여행이 처음부터 데쓰로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었다는 것을...

メ-テルは鉄郎春を支えた幻影、山の若者の胸の中で生まれ通り過ぎて行く明日への夢.
메텔은 데쓰로의 청춘을 떠받치고 있던 환영, 수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속에서 태어나 스쳐지나가는 내일을 향한 꿈.

いま、万感のおもいをめて汽笛が鳴る. さらば、鉄郎、さらば、メ-テル、さらば、銀河道999、さらば、少年の日...
이제, 수많은 추억을 담고 기적이 운다. 안녕, 데쓰로, 안녕, 메텔, 안녕, 은하철도999, 안녕, 소년의 날들이여...


에필로그

에필로그라 하니 은철과 함께 했던 지난 30여년 간의 수많은 추억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갑니다. 하지만 나는 얼마전 일기에 적었던 짤막한 글로 마지막을 대신하려 합니다. 나에게 있어 <은하철도 999>는 과거시제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기에, 그리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기에...

なぜかが出ちゃう、なせかわからないがが出ちゃう.
왜일까? 눈물이 나온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흘러 나온다.

高木均さんの名ナレ-ションのせいだったのかな?何度も繰り返しても、この場でが出ちゃうのは僕の少年の日がまだ終わらなかったのだろう.
“다카키 히토시”의 명 나레이션 때문일까? 몇 번을 반복해 보아도,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은 나의 소년의 날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確かに、確かにね...
분명히, 분명히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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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8 19:43 2007/12/18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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