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전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50엔 주고 산 <판타스틱 컬렉션 우주형사 갸방>
통행금지가 사라지고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 이 때 즈음해서 태어난 아기들이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버릴 정도의 아득했던 시절에 나는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사교육 열풍이다. 조기유학이다 해서 영어와 입시에 관련된 학원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주산/부기/속독학원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이런 학원들은 더 많은 원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으로 주말 마다 주변 국민학교(난 초등학교란 곳을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학생들을 모아 놓고 만화영화를 상영해 주며 학원을 홍보하던 그런 시대의 기억들 말입니다. 당시에 가정용 VCR이란 것은 주위에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생소했고, 매주 방영되는 만화영화는 방영 당일 보지 못하면 재방송 외에는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TV에서 방영해 주지 않는 일본 만화영화나 특촬 전대물은 주산학원이 아니면 보기 힘든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이곳 저곳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쪽의 학원으로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었습니다. 대부분이 8밀리(가정용 8밀리 비디오가 아닌 8밀리 필름) 영사기로 상영된 만화영화들은 우리말 더빙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국 혹은 일본에서 직수입하여 원어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단연 인기 있었던 것은 <그레이트 마징가>와 <가면 라이다>시리즈, 특히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우주형사 갸방>에도 게스트로 출연한 “미야우치 히로시(宮内洋)”주연의 <가면 라이다 V3>는 항상 화제를 몰고 다녔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주산학원에 VCR이라는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흔히들 익숙한 VHS방식이 아닌 지금은 사라져 버린 BETA방식으로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녹화해 온 어린이 프로그램이 몇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처음 보게 된 <우주형사 갸방>은 나에게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지금에서야 우주형사 삼부작, 혹은 그 뒤로도 계속되어진 메탈 히어로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로보캅>의 원형으로 더욱 잘 알려진 갸방의 컴벳슈트는 어린 시절 나만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두 가지 종류의 어린이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고단샤(講談社)에서 발행되는 테레비매거진(テレビマガジン)이란 잡지였고 또 하나는 토쿠마쇼텐(徳間書店)의 테레비랜드(テレビランド)란 아동용 TV프로그램 잡지였습니다. 당시 한달 용돈이 3,000원으로 잡지 가격이 한 권에 2,000원이었기 때문에 매달 테레비매거진과 테레비랜드를 격월로 구입할 수 밖에 없었지요. 당시엔 뉴타입 같은 잡지는 창간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아니메쥬나 아니메디아, 디 아니메 같은 애니메이션 전문지는 컬러화보 보다는 기사가 더 많아 선호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두 잡지에는 공히 만화판 <우주형사 갸방>이 연재 중이었고, 테레비랜드쪽의 연재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반면 테레비매거진쪽은 부록이 화려해서) 주산학원에서 친구들이 알지 못하는 갸방의 뒷 이야기(갸방 전용 탱크 갸비온의 스펙이나 갸방의 약점 등)를 자랑 삼아 이야기 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82년도 테레비매거진 부록인 <우주형사 갸방>은하경찰 수첩과 테레비랜드 부록인 <우주형사 갸방> 벰괴수 해부 북
매달 3,000원의 용돈으로 2,000원의 일본 잡지를 구독하던 소년은 이제 나이를 먹어 그 때의 아버지 정도의 나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돌이켜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훌륭하진 않지만 그래도 잘 버텨왔다는 느낌입니다. 25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 버린 작년 가을, 감자농장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과거의 그 <우주형사 갸방>의 DVD가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총 44화, 8장의 DVD로 구성된 박스세트는 소년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아련한 <우주형사 갸방>의 기억을 명확하고 실존적으로 되살려 내고야 말았습니다. 어릴 적엔 잘 몰랐는데, 지금에 다시 보니 <우주형사 갸방>은 정형적이라 할 정도로 그 포맷이 균일했습니다. 크래셔들과의 전투->증착(변신)->벰괴수 혹은 더블러와의 대결->마공 공간진입->갸방 블레이드 출현->레이저 블레이드로 업그레이드->갸방 다이내믹으로 마무리 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시청자에게 반복 주입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중독증세를 보이기 까지 합니다. 물론 사이바리안, 갸비온, 초차원 고속기 도루기란 등의 메카 액션이 가미되기도 하고 아버지 “보이서”를 찾는 “갸방”의 드라마적 에피소드가 어린이 대상 특촬 액션물의 단조로움을 어느 정도 완화해 주기는 하지만 서도요.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문제의 43화 <재회>편에서 보여주었던 감동적인 드라마와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44화/최종화 <돈 호러의 목>으로 이어지는 차기 우주형사 샤리방의 등장이 압권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째서 인지 제 18화 <공주님 컨테스트, 어기여차 용궁성>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름 특집으로 구성된 18화는 일본의 “우라시마 타로의 전설”(우리가 볼 때는 별주부전과 신선놀음이야기를 합쳐 놓은 듯 한)을 기초로 용궁의 보물을 차지하려는 우주범죄조직 마크의 음모를 그려내고 있는데, 나에게 있어서 그런 에피소드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해변을 중심으로 비키니 언늬들이 많이 많이 등장하며 특히 18화에는 더블걸(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마크의 수성인)역으로 전설의 AV배우 “히라세 리에(平瀬りえ)”가 게스트 출연하는 것에(그것도 비키니 차림으로)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히라세 리에”는 홋카이도 유바리 출신으로 극진 가라데와 JAC(Japan Action Club)의 일원으로 특촬물에 간혹 얼굴을 내밀기도 한 모양입니다. 원래 더블 걸 역의 “아즈마 마리코(東まり子)”의 그 아흐트랄한 외모만 계속 보다가 18화의 더블 걸이 너무 인상적 이어서 그녀의 뒷조사를 해보았는데, 지금은 잠적해서 현재의 모습을 찾을 순 없었습니다. 주로 성인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하고 볼륨감있는 몸매가 압권이었는데 말입니다. 현재 활동은 하고 있지 않지만 오십을 바라보고 있을 나이로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할 때 세월의 잔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 18화 <공주님 컨테스트, 어기여차 용궁성>에 출연한 "히라세 리에"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벡터맨>으로 대변되는 토종 특촬 전대물이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고렌인저>, <베틀피버>, <덴지맨>, <선발칸>, <고글V>, <가면 라이더 V3>, <가면 라이더 슈퍼원>, <가면 라이더 제트크로스>는 나의 어린시절의 우상이었고 꿈이었습니다. <우주형사 갸방>또한 그렇습니다. 일본문화가 철저하게 금지되었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특촬 히어로물을 보면서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세대로서 이제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메이드 인 제펜이었다는 것을 허물 없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절이 온 것에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늦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우주형사 갸방>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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