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 되는 장대비에 주말이라고 감히 나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며 그간 DVD만 구해 놓고 보지 못했거나 예전에 보았는데 다시 돌아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을 찾아 보았습니다.
1. 해피 플라이트 (ハッピーフライト)
해피 플라이트 ハッピーフライト | 2008년, 일본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감독
생각했던 것 처럼 유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항공기를 이용하면서 늘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생각, "왜 여자 분들은 저렇게 힘든 일을 학원까지 다녀가며 하고 싶어 할까? 웬만한 레스토랑 테이블 매니저도 이것 보다는 힘들지 않을텐데... 테이블 메니저 보다 CA(Cabin Attendant)가 더욱 가치가 있는 직업일까?"라는 생각에 큰 의문을 가지게 한 영화였다고나 할까요?
몇 년 전에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러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시원한 극장 안에서 두 시간 동안 재미있는 영화를 관람하면 그만이겠지만 영사실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상영 도중 플래터가 돌지 않아 필름이 쏫아져 내리기도 하고 화제 방지용 철판이 갑자기 떨어져 내리기도 하고, 두 시간... 관객들이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둡고 비좁은 영사실에서는 수 많은 영사기사분들이 좌충우돌하며 피를 토하는 것이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기 위해 승객들은 알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을 헤쳐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에 더욱 씁쓸 했습니다.
<워터보이즈>, <스윙걸즈> 그리고 <해피 플라이트>...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세상에 대한 너무나도 긍정적인 시선의 드라마(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보이는)를 선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DVD의 화상적 특성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2.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 2008년,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宮崎駿 감독
기본적으로는 "한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자신의 히트작인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를 비벼 놓고 유럽이 되어 버린 일본과 유럽인이 되어 버린 일본인의 모습에서 자위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영감님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던 일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아니메(애니메이션과는 구별해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장하지도 않고 변이 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억압적으로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던 영화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새롭게 느껴지시나요?
여담이지만 이놈도 DVD의 화상적 특성이 가히 최고라 할 만 합니다. 아울러 "포뇨"의 정신없는 곱슬머리가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3.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劇場版 カウボーイビバップ 天国の扉)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劇場版 カウボーイビバップ 天国の扉 | 2001년, 일본
와타나베 신이치로 渡辺信一郎 감독
<카우보이 비밥>이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든 이유 중 하나가 세기말 적 분위기와 더불어 보헤미안적인 등장인물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나름 생각해 봅니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미제버터와도 같은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 있을 미장센이 식상해 질 때 쯤 해서 등장한 극장판은 TV시리즈, 그 이상을 기대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의아한 장편이 아니었닐까 합니다. 25분짜리 TV 에피소드를 길게 늘여 놓았을 뿐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진화한 것도 없는 어정쩡한 천국의 문은 스파이크의 죽음 뒤에 공허할 수 밖에 없었던 나같은 사람에게 어떠한 갈증도 해소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TV시리즈에서 더 이상이란 수식어가 필요치 않을 정도의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 것이 극장판에게 독이 되었던 것일 수 도 있겠습니다마는 그 어떠한 변주나 신선함이 결여된 비밥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4.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 | 1997년, 일본
이타미 주조 伊丹十三 감독
젊은 미망인이 궁극의 라멘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 <담포포 タンポポ>, 야쿠자의 탈세 사실을 주도 면밀하게 파해치는 독사같은 여성 세무원의 이야기를 담은 <마루사의 여자 マルサの女>, 민사개입폭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 변호사의 모습을 그린 <민폭의 여자 ミンボーの女>, 망해가는 슈퍼마켓을 되살려내는 여성 점장의 이야기인 <슈퍼의 여자 スーパーの女>. "이타미 주조"와 "미야모토 노부코 宮本信子" 부부 콤비의 ~여자 시리즈 그 마지막을 장식한 <마루타이의 여자>는 신흥 종교 집단에게 살해된 피해자를 목격한 여배우와 여배우를 증인석에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시청 증인보호대의 모습을 무대극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영화가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감독인 "이타미 주조"가 불륜 스캔들에 휩싸여 의문의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의 유작이 되어 버린 <마루타이의 여자>를 마지막으로 위트있고 휴머니즘 넘치는 "이타미 주조"의 ~여자 시리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양한 성격과 환경의 인물들과 이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 희화된 부조리를 요목 조목 짚어내는 "이타미 주조"의 여인들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런지...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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