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977, 福田純 / 東宝 / 惑星大戦争
80년대 주한미군방송(당시 AFKN)에서는 금요일 심야에 Late Night Movie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종종 영어로 더빙된 일본 특촬영화가 그 코너를 통해 전파를 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81년 혹은 82년 경으로 기억되는데, <War in Space>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혹성대전쟁>을 본 적은 있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기억마저도 또렷하지 못한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혹성대전쟁>이 급작스럽게 DVD로 공수 되어 당시의 기억을 다시금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DVD에는 영화 본 편과 더불어 금성 대마함의 “헬 사령관” 역으로 출연했던 노배우 “무쓰미 고로(睦五朗)”와 자칭 SF오타쿠라 칭하는 여성 SF연구원 “오야마 노루마(尾山ノルマ)”의 2004년도 판 커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데, 1시간 30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 <혹성대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는 10분도 채 되지 않으며, “무쓰미 고로”가 과거에 출연했던 <고지라VS메카고지라>, <파이어 맨>, <마그마 대사>, <에스파이> 등 60, 70년대 특촬물에 대한 잡담만이 가득해 무지 지루했습니다. 특히 이제 70이 넘은 “무쓰미 고로”는 <혹성대전쟁>을 비롯 본인이 출연했던 특촬영화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 해 도대체 이거시 무슨 커멘터리일까? 라는 의구심마저 갖게 하더군요. 오직 기억 나는 것은 당시 17세였던 80년대 일본 드라마의 여왕 “아사노 유우코(浅野ゆう子)”의 긴 다리와 미모에 대한 것으로 “아사노 유우코”는 영화로 보는 것 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10배 이상 예쁘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멘트를 남발하더군요.
제작 년도는 1977년, 당시 미국에서는 “조지 루카스”감독의 <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등의 SF영화가 대 히트하였고 다음 해인 78년 여름 일본 공개를 앞두게 됩니다. 50년대부터 계속된 특촬 SF영화가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일본에서는 이러한 할리우드 SF영화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각 사의 최고의 스텝들을 모아 이에 대항하기 위한 특촬물을 제작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얼마 전 부천 판타스틱 영화에서 상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후카사쿠 킨지(深作欣二)”감독의 <우주로부터의 메시지(宇宙からのメッセージ)>였고 다른 한 편이 “후쿠다 쥰(福田純)”감독의 <혹성대전쟁>이었습니다. 결과는 두 편 모두 흥행에 참패하여 일본 SF특촬 영화의 종말을 고한 작품이 되었지만, 두 작품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매력은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원래 혹성대전쟁은 스타워즈의 일본 공개제목으로 예정되었으나 “조지 루카스”가 전 세계 공개명을 <스타워즈>로 통일하는 바람에 이쪽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77년 10월 준비고 단계에서 기획회의가 소집되었고 77년 12월 17일에 극장 공개되었습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급박하게 제작을 하다 보니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인지 제작사인 토호에서는 당시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스타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와 미우라 토모카즈(三浦友和)”공연의 <안개의 깃발(霧の旗)>과 동시 상영으로 흥행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여담이지만 “왕 자웨이”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국내판 비디오에 보면 주인공 “하지무”를 연기한 일본배우 “카네시로 다케시(金城武)”가 여자친구가 데미 무어를 닮았는데 내가 브루스 윌리스를 닮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다라는 자막이 있습니다. 용감한 의역으로 원문은 여자친구가 야마구치 모모에를 닮았고 자신이 미우라 토모카즈를 닮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졌다로, 미우라 토모카즈 이 나쁜 자식! 이라고 외치며 미드레벨 에스켈레이터를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있지요…)
극 중 무대는 1988년, 80년대 초부터 UFO에 의한 전파 방해가 시작되자 UN은 외계인 침공에 대비해 우주방위함 고우텐(轟天)의 건조를 시작하지만 UFO의 출현과 방해전파가 사라지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건조는 중단되고 고우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갑니다. 88년에 이르러 과거의 유성우와 전파방해가 기승을 부리자 UN은 고우텐의 설계자이자 함장인 "다키가와 마사토(滝川正人)”에게 건조 재개를 부탁하고 다키가와는 고우텐의 재건을 그다지 탐탁해 하지 않습니다.(뒤에 밝혀지는 내용이지만 고우텐에 탑재되는 에테르폭탄의 파괴력에 주저한 것이지요.)
이야기는 과거 고우텐의 승무원으로 함께 훈련 받았던 “미요시(三好)”, “무로이(室井)”, “후유키(冬木)”, “미카사(三笠)”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미요시”와 “무로이”는 다키가와 함장의 딸 “쥰(ジュン)”과 이상 야롯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고요. 금성에 전진기지를 둔 대마함의 본격적인 지구 공격이 시작되면서 과거의 고우텐 멤버들이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위치한 고우텐 지하기지에 집결합니다. 헬 파이터의 융단 폭격에 간발의 차이로 완성되어 날아오른 고우텐은 항공 폭뢰를 사용해 지구 상의 헬 파이터를 쓸어 버린 후 대마함과의 결전을 위해 금성으로 출격합니다.
63년 공개된 일본 특촬물의 대표작 <해저군함(海底軍艦)>의 고우텐의 오마쥬로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혹성대전쟁>은 핵무기와 특공자폭으로 얼룩진 과거 세계 대전의 어두운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어찌 보면 지구를 구하는 일본 군함이란 이미지에서 과거의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출연 배우 중 몇몇은 고인이 되었고 남아 있는 배우들도 60, 70을 넘긴 오래되고 곰삭은 영화이기도 하고 화려했던 일본 특촬 영화의 황혼기를 느낄 수 있는 조금은 서글픈 일작이기도 합니다.
지금 보면 얄팍한 이야기 구조나, 수준 이하의 특수촬영이 거시기 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시대를 그리고 그 시대정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살아있는 죽음이다.”라는 “장 꼭도”의 말처럼,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대로의 타임슬립,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1977년에 바라본 1988년의 미래는 2008년에 돌아 보는 과거 20세기의 기억으로 다시금 재조명해 보아도 나쁘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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