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디지털 사진 파일에 촬영 일시 뿐 아니라 각종 촬영 정보, 별매품을 사용한다면 촬영 장소의 위도 및 경도까지 함께 첨부되어 촬영 데이터를 어렵지 않게 확인해 볼 수 있지만 필름 카메라 시절에는 이러한 촬영 정보 수집을 위해 별도의 데이터백을 장착, 필름 혹은 필름의 프레임 사이에 작은 글씨로 간략한 촬영 날짜와 정보를 기록하거나 그것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일히 손으로 메모하여 현상된 필름과 비교해 보며 데이터시트를 만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니콘의 일안 반사식 카메라인 F5가 발매되었던 1996년의 상황도 앞서 언급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F90, F90X, F100, F5로 구성되는 니콘 F의 5세대 카메라들은 그간 진보를 거듭해 온 전자기술과 더불어 당시로서는 최신 IT기술의 일부가 접목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니콘 F5는 최대 80롤의 필름 촬영 데이터를 동시에 내부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촬영 데이터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는 별매품인 MC-31 데이터 케이블, 전자 릴리즈 겸용 혹은 MC-33 데이터 케이블과 Nikon Photo Secretary-I For F5라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요.
발매 당시에 MC-33 과 Nikon Photo Secretary-I For F5의 가격이 4만엔대 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선뜻 구입하기에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MC-33도 Photo Secretary도 단종이 되어 신품을 구입할 곳이 없어지고 또 4~5년 전에 MC-33의 기능을 온전히 수행하는 RS-232 시리얼 컨버터 회로가 인터넷에 떠돌면서 많은 사용자들이 MC-33을 자작하여 서드파티에서 판매되는 SoftTALK2000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촬영 데이터를 확인하거나 카메라의 커스텀 세팅을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일안반사식 은염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 이 마저도 시들해져 버렸지만 말입니다.
나도 당시에 어떤 분의 도움으로 SoftTALK2000을 구해 6핀 마우스 선과 만능기판에 조악하게 조립한 사제 MC-33으로 몇 번 카메라에 접속하여 데이터를 확인해 본 적이 있지만 그것도 잠깐 사이에 흥미를 잃어 어딘가 던져 버리고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얼마전에 환상 속의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했었던 Nikon Photo Secretary-I For F5을 또 다시 어떤 분의 도움으로 입수하게 되고 과거의 그 자작품 MC-33을 뒤집어 찾아 보아도 어딘가로 망실되어 발견할 수 없었기에 다시 한번 예전의 인터넷 자료를 찾아 부품을 구입해 휴가 중에 다시 하나 만들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다 만들고 나서 인터넷에 완제품을 5,500원에 파는 곳을 발견, 다시 한번 망연자실하기는 했었지만서도요...
이번에는 장터를 통해 니콘 F 및 D시리즈에도 사용가능한 전자 릴리즈 MC-30도 구입했습니다. MC-30의 중고가격이 3만원, 기타 다른 부속 일체 해서 배송료까지 만원 안팍으로 가격은 저렴했습니다. MC-30에서 제공되는 니콘 전용 10핀 케이블을 잘라 전자릴리즈와 데이터케이블 겸용의 MC-31을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요즘 나오는 컴퓨터에는 25핀 혹은 9핀 시리얼 단자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시리얼을 USB로 변환해 주는 케이블 까지 구입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겪고 나서야 카메라를 PC에 연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다행히도 Nikon Photo Secretary-I For F5는 윈도우즈 98용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XP에서도 큰 문제 없이 작동했습니다.
우선 카메라를 접속 시키자 아래와 같이 카메라의 아이디가 출현 합니다. 기본값은 255, 시리얼 포트만 지원해 준다면 동시에 256대의 카메라를 접속하여 제어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기존에 사용했던 SoftTALK2000은 니콘 F 5세대 계열 공용인데 비해 Photo Secretary For F5는 F5 전용 소프트웨어로 보다 정교한 제어가 가능해 졌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 해 본 것은 지금도 디지털 일안반사식 카메라인 니콘 D를 통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3D RGB측광의 패턴보고, 피사체의 명암 뿐 아니라 컬러패턴까지 인식하여 최적의 노출을 찾아 낸다는 그 막강한 반사식 노출계의 패턴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상당히 그로테스크 하기는 한데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니콘의 제품에 대한 철학은 조금 우직하고 무식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경쟁 C사는 카메라에 잔재미를 조금 많이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석에서 우수갯소리로 혓바닥이 길다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서도요.
니콘 F5의 커스텀 세팅입니다. 니콘 F5는 24개 항목에 달하는 사용자 지정 옵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본체에 A, B 두개의 뱅크에 저장 시켜 놓고 필요할 때 로드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Photo Secretary를 사용하면 이 커스텀 세팅을 보다 정교하게 지정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부 중점 측광의 측광 범위를 1mm 단위로도 조종이 가능합니다.
카메라 원격 제어부입니다. 카메라에 손대지 않고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카메라의 모든 기능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제품 촬영 같은 정적인 촬영을 수행할 때에는 카메라를 삼각에 고정 시키고 노트북을 통해 원격 조정, 릴리즈 촬영을 할 수 있어 정교한 작업에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물론 필드에서야 크게 쓸 일이 없는 기능이지만 서도 말입니다.
카메라 제어시 콘솔에 카메라 상태가 아래와 같이 표시됩니다. 액정 콘솔이나 뷰파인더 HUD와 비교해 큼직하고 가시성이 좋기 때문에 특수목적, 예를 들어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카메라를 고정시키고 일주일 정도에 걸쳐 인터벌 촬영 같은 것을 수행하고자 할 때 상당히 쾌적한 환경을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촬영 데이터에 관한 건인데, 꺼내 보니 카메라를 구입하고 지금까지 약 160롤 정도를 촬영한 것으로 되어 있더군요. 원래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지만 내 카메라가 자동차로 치자면 이제 1,000키로도 주행하지 않은 완전 신품인 것에 즐거워 해야 할지 아쉬워 해야할지 만감이 교차합니다. 기본적인 데이터는 자동적으로 저장이 되며 기타 코멘트 부분에 특이사항을 입력할 수 있고 귀찮기는 하지만 필름을 스캔하여 BMP타입의 섬네일로 만들 경우 프리뷰 기능까지 제공하는 것으로 볼때 당시로서는 너무 앞서간 모듈이 아닌가 합니다.
나름 두 시간 정도 투자해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 치고는 색다른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사실 니콘 F는 가장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카메라이기도 하고요. 그 동안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사용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기능들을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니콘 F90, F90X, F100, F5를 사용하시는 분 중에 아직 MC-33 연계 기능을 사용해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한번 쯤 시간을 투자해 확인을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관련 자료는 인터넷에 많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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