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 감기기운도 살짝있고 약 때문인지 몸도 나른하고 정신도 몽롱하네요. 나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출퇴근 시간,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용 디지털 음향기기로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제 경우에는 플레이리스트가 빨리 빨리 업데이트 되지 않는 편이고 한 때는 집에 있는 음반을 모조리 휴대용 디지털 음향기기에 넣어 다닌 적도 있지만 사과 인테리어사의 믿을 수 없는 정책 때문에 몇 주 간에 걸쳐 인코딩한 음반을 모두 날려 먹기 일쑤였습니다.(사과 인테리어는 자사의 휴대용 디지털 음향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새것으로 바꾸어 주고 그 안에 들어있던 저작물에 대해서는 쌩깐다는 이상한 고객만족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항상 같은 음악들만 듣기에 한계를 느껴 보다 새롭고 신선한 컨텐트를 몰색하던 중 작년 부터 전 세계에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podcast의 세계에 몸을 담구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몇몇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선도하고 주입하는 단방향 미디어의 세계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느낌입니다. 나 같은 미물도 간단한 가전제품(요즘 개인용 컴퓨터는 가전제품이란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합니다.)을 가지고 나 만의 컨텐트를 전 세계에 방송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지요. 사과 인테리어에서 밀어 넣은 음악상점을 통해 podcast방송국을 검색하다 보니 너무 상업적이고 정형적인 그런 방송들 밖에 발견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대표적인 반골이고 안락하게 시류에 편승하기 보다는 할 수 있다면 최소한의 자존심 정도는 세우고 싶은 무지한 민초이기 때문에 음악상점에 정갈하게 포장된 방송국들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지하세계의 podcast 방송국을 찾아 해매던 중 두 개의 방송을 선택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 첫 번째가 된 것이 요코하마의 재즈클럽 "FarOut"에서 녹음되고 방송되는 <릭 무라오의 재즈시 대전(Rik村尾のジャズ詩大全)>이었지요. 이 <재즈시 대전>이란 것을 돌이켜 보자면 90년대 초반 일본이 버블경제의 무시무시한 위용을 과시하던 시절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일종의 오디오북이었는데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재즈피아니스트 "릭 무라오"가 스탠다드 재즈 넘버의 역사적 배경, 자잘한 에피소드, 작곡/작사/가수의 약력과 가사의 의미를 소개하고 넘버들의 원곡이 별도의 컴팩트 디스크로 제공되는 형태였습니다. <재즈시 대전>은 크게 성공하고 그 후로 시리즈화 되어 지금까지도 계속 출간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재즈시 대전>이 podcast가 되었더군요. 책의 저자인 "릭 무라오"가 해설을 여성 재즈보컬인 "혼고 사토코"가 진행을 맞아 요코하마의 재즈클럽 "FarOut"에서 녹음한 뒤 2주에 한번 꼴로 podcasting되는 <릭 무라오의 재즈시 대전(Rik村尾のジャズ詩大全)>은 한 회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스탠다드 재즈 넘버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30초 정도의 미리듣기, 간혹 "Rik 무라오" 본인이 피아노를 치며 원곡을 노래하기도 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재즈가 아주 인기가 없지요. 라디오 방송을 들어도 제대로 된 재즈넘버 한 곡 듣기 힘들고 90년대 퓨전이다 얼터니티브다 하는 변종이 기승을 부려 스탠다드에 대한 인식이 고리타분한 시대에 뒤떨어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퓨전이나 얼터니티브가 나쁘다는 생각은 없지만 대중에게 어필된 곡들이 너무나도 상업적이기에 문화의 다양성을 주장하고 싶은 나 같은 무지랭이에게는 결코 매력적일 수 없는 것이겠지요. 20분 정도의 방송에 편안하게 해설이 곁들여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아마도 podcast같은 독립 방송이 아니면 결코 접할 수 없었던 그런 컨텐트가 아닐까 합니다.
두 번째로 선택한 방송은 <철학박사 강유원의 재미없는 철학이야기>라는 것인데, 사실 이 방송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는 강유원박사와 안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나와 절친한 용산에 계시는 호는 용독(龍毒)이요 자는 발전(發電)이신 분이 15년전 한 PC통신시절 부터 가깝게 지내오시던 분이라 이런 저런 요절복통할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 왔었습니다. 특히 강유원박사 댁에 놀러간 용독옹께서 담배가 떨어진 급박한 상황에 입담배를 말아 필 요량으로 가장 안 볼것 같은 강박사의 독일어 사전을 한장 뜯어내 시초하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강박사의 주종목이 독일철학이라 하루만에 적발되어 고초를 겪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간혹 술자리에서 우스개 소리로 등장하곤 하지요. 한 때는 문화센터에서 강유원박사의 <텍스트 읽기의 이해>라는 강좌(지금은 진행하지 않는 듯 하지만)을 수강할 까 하던 생각도 있었습니다. 왜냐면 교재로 사용된 것이 제가 아주 좋아하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기 때문으로 기억됩니다. 그간 용독옹을 통해 라디오에서 이런 저런 책읽기에 대한 내용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왔지만 그 내용이 podcasting되고 있다는 것은 얼마 전에서야 알게되었습니다. 목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전라도 분이신 것 같더군요. 어떻게 보면 딱딱할 것 같은 사회과학도서를 쉽게 쉽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보통 40~50분의 방송이 그리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분이 예전에 <책>이라는 책을 내서 그 책을 보고 용독옹과 한번 또 뒤집어 진적도 있군요.
podcast라는 것이 꼭 사과 인테리어사의 "나는 주머니"라는 휴대용 디지털 음향기기가 있어야만 청취가능 한 것이 아니고 공개 소프트웨어인 "나는 가락"이란 것으로 청취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들어 보셔도 나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세상은 날로 각박해지고 돈이면 부모형제도 팔아치울 것 같은 그런 시스템 속에 소박하지만 진솔한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그리워 지는 것이 나만의 아집일까요? 글쎄요... 그 해답 역시 아직은 요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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