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훔친 남자 太陽を盗んだ男 | 1979년, 일본
하세가와 카즈히코 長谷川和彦 감독
최근 국내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 <에반게리욘 신극장판:파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破>에서 등장인물인 이부키 마야伊吹マヤ의 출근 장면에 본 작의 사운드 트랙인 YAMASHITA가 BGM으로 삽입되어 세간에 아주 약간의 관심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마이 신지相米慎二감독의 <태풍클럽台風クラブ>, 이와이 슌지岩井俊二감독의 <스왈로우테일スワロウテイル>과 더불어 최고의 일본 영화로 꼽아 두고 있던 영화로 상당히 초라한 필모의 소유자인 하세가와 카즈히코감독의 두 번째이자 (현재 까지) 마지막 영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피폭국인 일본에서 원자폭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영화 이전에 몇 몇 형사 드라마에서 원자폭탄 제조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볼 수 있었지만 두 시간 반에 육박하는 극장판 영화의 전면에 원폭을 내세운 경우는 아마도 <태양을 훔친 남자>가 최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데뷔작인 <청춘의 살인자青春の殺人者>를 통해 근친살인에 대한 냉혹한 시각을 선보인 후(사실 청춘의 살인자는 위성 CS 채널인 neko채널에서 십수년 전에 본 적은 있지만 그리 집중해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 입장은 못됩니다.) 원래는 무라키미 류村上龍의 소설인 <코인 록커 베이비스コインロッカー・ベイビーズ>의 영화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각본가 레너드 슈나이더Leonard Schrader의 초고 The Kid Who Robbed Japan을 본 후 차기작에 대한 방향을 선회하여 레너드 슈나이더(이 양반은 후에 윌리엄 허트William Hurt 주연의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로 당해 년도 오스카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버렸지만서도요.)와 함께 <태양을 훔친 남자>를 작업하게 됩니다. 물론 영화화에 있어서 사회적인 반발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감독 자신도 태내피폭자임을 증명하는 사회보장 증서를 언론에 공개하는 등의 웃지 못할 뒷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여담이지만 무라카미 류의 <코인 록커 베이비스>는 발킬머Val Kilmer, 아사노 타다노부浅野忠信, 리브 타일러Liv Tyler 등의 캐스팅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원래 이 영화의 첫 제목은 <일본과 나日本と俺>였습니다. 두 번째 각본에서는 제목이 <웃는 원폭笑う原爆>이 되었다가 <플루토늄 러브プルトニウムラブ>라는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로 선회, 최후에 <일본을 훔친 남자日本を盗んだ男>를 거쳐 <태양을 훔친 남자>가 제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이 제목 때문에 후에 말이 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흥행 실패의 원인이 <태양을 훔친 남자>라는 재미없을 것 같은 제목 때문이었다는 제작사 쪽의 비공식적인 견해였습니다. 더 아이러니 한 것은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태양을 훔친 여자>라는 제목의 영화가 공개된 것이지요. 내용은 전혀 달랐지만 말입니다.
<태양을 훔침 남자>는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고독한 세대에 대한 냉소가 가득 합니다. 과거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를 그리워 하며 "그래도 그때는 굶지는 않았지..."라고 읆조리는 부류의 사람들,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무목적의 인류,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모르지만 또한 삶의 근본적인 생태계마저 망각해 버린 그런 사람들의 모습들 말입니다. 도쿄의 한 중학교 물리교사가 자신의 독신 아파트에 플루토늄 정제 시설을 꾸리고 이바라키현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강탈한 액체 상태의 풀루토늄239를 기폭이 가능한 고체 플루토늄으로 정제하는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학교 교사 자체도 방사능에 피폭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지요.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한 그는 정부를 협박해 작은 성과를 하나 얻어 냅니다. 다름 아닌 오후 9시 뉴스 시간에 맞추어 종료되는 프로야구 야간경기 중계를 끝까지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였지요. 당시 핵보유국(공식 6개국, 비공식 2개국)에 이어 9번 째로 핵을 보유했다는 이유에서 넘버9이란 이름으로 두 번째 요구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대정부 요구를 모집하게 되고(라디오 프로그램의 DJ의 이름은 사와이 레이코沢井零子로 그녀의 이름에서 제로라는 애칭으로 불리웁니다. 그녀는 9번 다음의 숫자로 노스텔직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결국 당시 마약사건으로 일본국내에 공연이 금지된 롤링스톤즈의 래일 공연을 2차 요구로 제시하지만 정부에서는 이 공연을 함정으로 넘버9을 잡을 계획을 꾸밉니다. 플로토늄 정제시설을 만들기 위해 얻어쓴 사채를 갚기 위해 5억엔의 현금마저 요구하는 넘버9, 그에게 원자폭탄은 무엇이든 얻어내기 위한 도구였지만 얻어내고자 하는 존재에 대한 의문은 그를 끝없는 나락에 떨어뜨립니다.(결국 롤링스톤즈는 90년도가 되어서야 일본에서 해금되었습니다.)
쥬리ジュリー라는 애칭으로 더욱 잘 알려진 가수 사와다 겐지沢田研二가 목적을 상실한채 방황하는 교사 키도 마고토城戸誠를, 그를 쫓는 악발이 형사 야마시타 마스오山下満州男(에반게리욘:파 에 삽입된 BGM은 바로 이 양반의 테마곡이죠.)에는 <인의 없는 싸움仁義なき戦い>시리즈의 불사신 조장 스가와라 분타菅原文太가 그리고 넘버 9을 사랑했던 여인 넘버 0에는 외모만을 보았을 때 일본 여배우 중 열손가락 안에 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케가미 키미코池上季実子가 그들의 영화경력을 아우러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도입부 키도 마고토가 이끄는 중학교 수학여행 버스를 납치해서 학생들을 인질로 천황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노인(일본의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카미카제 특공대의 군복차림으로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했던)의 에피소드를 살짝 끼워 놓아 대단히 구조적인 영화적 복선을 장치한 감독의 연출력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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