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19일 <백금화로>겨울이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작년 보다 동장군이 더 기승을 부리는 것 같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에는 멸치 국물을 우리는 놋쇠깡통에 석면을 대고 번개탄의 축소형이라고 볼 수 있는 석탄 연료를 성냥불로 점화해 손을 녹이는 손난로가 겨울에 종종 등장하곤 했다.
손이 곱는 추위에 잠시나마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물건이었지만 연탄가스 냄새가 나고 전용석탄을 파는 곳이 많지 않을 뿐더러 석탄가루가 날려 주머니 안이 온통 시꺼멓게 변해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반의 누군가가 지포라이터를 대여섯배 정도 크게 만들어 놓은 모양의 주머니 난로를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석탄이 아닌 기름을 연료로 하는 주머니 난로, 번쩍거리는 니켈크롬바디에 24시간 이상 고온이 지속되는 이 물건은 바다 건너 일본의 물건으로 당시에 일반인의 해외여행이 금지되고 대부분의 외제물건들은 미군PX나 보따리 밀수로 비싼 값에 구할 수 밖에 없었던 민초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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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923~2005, ハクキンカイロ / Zippo Handy Warmer |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것이 바로 1923년 일본의 발명가 "마토바 니이치"가 발명한 <하쿠킨카이로(백금화로)>로 기화되는 벤젠이 백금과 결합하면 열을 발생한다는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한 희대의 발명품이었던 것이다.
80년이 넘는 세월을 장수한 장수 상품으로 나가노 동계 올림픽의 성화봉송에도 사용될 정도로 유명세를 몰고 있고 70년대 대기업 마쯔시타전기가 <하쿠킨카이로>에 대항하기 위해 출시한 <코우킨카이로(황금화로)>를 물리치고 21세기인 지금까지 손난로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는 <하쿠킨카이로>는 어린 시절의 추억 뿐 아니라 요즘 같은 추위에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는 나의 애장품 중 하나가 되었다.
10년전 신용카드사의 통신쇼핑으로 해외 수출용의 PEACOCK #S를 구입했다.(하쿠킨의 열분출구 모양이 공작새 모양을 하고 있어 해외에서는 PEACOCK이란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10년 전 모델이기에 요즘 나오는 가열형 S버너가 아니라. 심지에 불을 붙히는 A형 버너를 탑재한 모델이다. 10년을 사용했는데도 소모품인 버너가 아직도 동작을 한다.
최근 좀 더 큰 모델이 필요해 온라인 쇼핑몰에서 <하쿠킨카이로>중 가장 큰 사이즈와 발열량을 자랑하는 PEACOCK #G를 구입했다. 최근 <하쿠킨>의 주력 모델은 3R, 라이터 내장형의 BM모델도 있고 전기로 점화하는 플라스티나모델, 여성용 고하루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은 일본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 #S(3R과 동일한 사양)과 혹한지용 #G모델, 여성용 "고하루" 뿐이지만 <하쿠킨카이로>는 내수나 수출용을 불문하고 동일한 성능을 보여준다.
2002년 부터는 미국의 오일라이타 제조업체 ZIPPO사의 OEM으로 납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은 ZIPPO버젼의 <하쿠킨카이로>. 모양이 더욱 각져졌고 열분출구가 멋진 공작모양이 아닌 ZIPPO라이터의 방풍막모양으로 변형되어 있다.
요즘은 철이 공기와 융합되어 산화되며 열을 발생시키는 일회용 손난로를 많이 사용하지만 나는 기름만 넣어주면 버너만 교환해주면 평생을 사용할 수 있는 <하쿠킨카이로>에 더욱 정이 간다.
사용하고 버려버리는 그런 물건엔 애착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