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6일 < Pelikan M400 >곧 졸업과 입학시즌이다. 백화점, 할인마트,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벌써부터 난리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모바일 휴대전화, MP3 플레이어, 노트북 같은 디지털 가전이 졸업, 입학 선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아마도 만년필이 가장 보편적인 졸업, 입학 선물이지 않았을까 한다.
실제로 나도 두 번이나 만년필을 선물 받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다니던 교회의 교우들에게 선물 받은 것도 만년필이었고 대학을 졸업할 때 아버지 회사 분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도 기억한다. 물론 순금 촉을 가진 고가의 만년필은 아니었고 이른바 졸업, 입학 만년필이라 불리우던 영국제 파커45는 이렇게 두 번이나 내 손에 쥐어졌던 것이다.
가격이 싸고 가벼웠으며 필기감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저가품이다 보니 몇년 사용하면 촉의 닙이 벌어져 점점 글씨가 굵어졌기 때문에 한 1년 사용하면 어디로 갔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사용하지 않게 되어 버린다.
나는 알아주는 악필이다. 그래서 손으로 글을 쓰는 것 보다는 타이프라이터나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마 워드프로세서가 일반화되지 않았다면 직장에서 나의 악필 때문에 적잖은 핀잔을 들었으리라. 직장생활을 10년 정도 하다 보니 이제 내가 결제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고 이 때문에 사인용 만년필을 구입하게 되었다. 프랑스제 워터맨 필레아는 내 손으로 구입한 첫 번째 만년필이 되었다. 2년을 사용하다 술먹고 잃어버리기 전 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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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likan Sauveran M400 / EF nib / Bla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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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모 전자전시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파커 벡터만년필을 쭈욱 사용했는데, 울 보스가 사용하는 몽블랑 만년필 전용 잉크를 훔쳐 넣었기 때문인지 한참 동안 문제없이 사용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몸통에 전자회사 광고가 덕지 덕지 인쇄된 만년필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게되면서 새로 한필 구입하고자 기웃거리기 시작했는데, 가장 싼 라인업이 40만원을 넘어버린 몽블랑은 분수에 맞지 않았고, 일전에 사용해 본 경험이 있던 워터맨의 상위 모델도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고민 고민하다 선택한 것이 독일제 펠리칸의 M400, 이 또한 얼마나 사용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몇 년 쓰다 잃어 버리고 재껴 버리면서도 반드시 만년필병이 도져 새 모델을 찾곤 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만년필 세대인가 보다. 이번엔 기필코 만년이란 펜의 이름에 걸맞게 사용해 보고자 몸통에 이름의 이니셜 까지 박아 넣었다. 내 이름은 함부로 할 수 없을 꺼라는 기대 때문에...
101개의 자판을 넘나들며 정확한 디지털 서체로 핸드라이팅보다 빠른 시간에 문서를 만들어 주는 워드프로세서에 익숙해져 버린 나지만 종이 노트위에 묻어나는 그윽한 잉크내음과 얼음위의 스케이트처럼 미끄러지는 금촉의 매끄러운 감촉은 모호하고 굳어지지 않은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되살려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