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fly Kiss 21

주말에 본 영화 #1

2009/07/20 16:46 영화일기/DVD
연일 계속 되는 장대비에 주말이라고 감히 나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며 그간 DVD만 구해 놓고 보지 못했거나 예전에 보았는데 다시 돌아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을 찾아 보았습니다.

1. 해피 플라이트
(ハッピーフライト)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피 플라이트 ハッピーフライト | 2008년, 일본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감독


생각했던 것 처럼 유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항공기를 이용하면서 늘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생각, "왜 여자 분들은 저렇게 힘든 일을 학원까지 다녀가며 하고 싶어 할까? 웬만한 레스토랑 테이블 매니저도 이것 보다는 힘들지 않을텐데... 테이블 메니저 보다 CA(Cabin Attendant)가 더욱 가치가 있는 직업일까?"라는 생각에 큰 의문을 가지게 한 영화였다고나 할까요?
 
몇 년 전에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러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시원한 극장 안에서 두 시간 동안 재미있는 영화를 관람하면 그만이겠지만 영사실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상영 도중 플래터가 돌지 않아 필름이 쏫아져 내리기도 하고 화제 방지용 철판이 갑자기 떨어져 내리기도 하고, 두 시간... 관객들이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둡고 비좁은 영사실에서는 수 많은 영사기사분들이 좌충우돌하며 피를 토하는 것이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기 위해 승객들은 알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을 헤쳐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에 더욱 씁쓸 했습니다.

<워터보이즈>, <스윙걸즈> 그리고 <해피 플라이트>...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세상에 대한 너무나도 긍정적인 시선의 드라마(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보이는)를 선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DVD의 화상적 특성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2.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 2008년,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宮崎駿 감독


기본적으로는 "한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자신의 히트작인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를 비벼 놓고 유럽이 되어 버린 일본과 유럽인이 되어 버린 일본인의 모습에서 자위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영감님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던 일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아니메(애니메이션과는 구별해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장하지도 않고 변이 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억압적으로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던 영화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새롭게 느껴지시나요?

여담이지만 이놈도 DVD의 화상적 특성이 가히 최고라 할 만 합니다. 아울러 "포뇨"의 정신없는 곱슬머리가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3.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劇場版 カウボーイビバップ 天国の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劇場版 カウボーイビバップ 天国の扉 | 2001년, 일본
와타나베 신이치로 渡辺信一郎 감독


<카우보이 비밥>이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든 이유 중 하나가 세기말 적 분위기와 더불어 보헤미안적인 등장인물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나름 생각해 봅니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미제버터와도 같은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 있을 미장센이 식상해 질 때 쯤 해서 등장한 극장판은 TV시리즈, 그 이상을 기대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의아한 장편이 아니었닐까 합니다. 25분짜리 TV 에피소드를 길게 늘여 놓았을 뿐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진화한 것도 없는 어정쩡한 천국의 문은 스파이크의 죽음 뒤에 공허할 수 밖에 없었던 나같은 사람에게 어떠한 갈증도 해소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TV시리즈에서 더 이상이란 수식어가 필요치 않을 정도의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 것이 극장판에게 독이 되었던 것일 수 도 있겠습니다마는 그 어떠한 변주나 신선함이 결여된 비밥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4.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 | 1997년, 일본
이타미 주조 伊丹十三 감독

젊은 미망인이 궁극의 라멘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 <담포포 タンポポ>, 야쿠자의 탈세 사실을 주도 면밀하게 파해치는 독사같은 여성 세무원의 이야기를 담은 <마루사의 여자 マルサの女>, 민사개입폭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 변호사의 모습을 그린 <민폭의 여자 ミンボーの女>, 망해가는 슈퍼마켓을 되살려내는 여성 점장의 이야기인 <슈퍼의 여자 スーパーの女>. "이타미 주조"와 "미야모토 노부코 宮本信子" 부부 콤비의 ~여자 시리즈 그 마지막을 장식한 <마루타이의 여자>는 신흥 종교 집단에게 살해된 피해자를 목격한 여배우와 여배우를 증인석에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시청 증인보호대의 모습을 무대극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영화가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감독인 "이타미 주조"가 불륜 스캔들에 휩싸여 의문의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의 유작이 되어 버린 <마루타이의 여자>를 마지막으로 위트있고 휴머니즘 넘치는 "이타미 주조"의 ~여자 시리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양한 성격과 환경의 인물들과 이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 희화된 부조리를 요목 조목 짚어내는 "이타미 주조"의 여인들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런지...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맨 위로

혹성대전쟁 / 惑星大戦争

2008/05/26 18:12 영화일기/DVD
사용자 삽입 이미지

(c)1977, 福田純 / 東宝 / 惑星大戦争

<혹성대전쟁(惑星大戦争)>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아마도 80년대 초 인기를 모았던 능력개발사의 로봇대백과를 통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케이분샤(勁文社) 대백과 시리즈를 카피해 짜집기 해놓은 능력개발 대백과 시리즈는 당시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 있었던 아이템이었고, 그 중 첫 번째로 대 히트를 기록한 로봇 대백과의 권두에 미려한 컬러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된 <혹성대전쟁/금성대마함> 편은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와 비장한 결말로 나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간 많은 어린이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지요. 그 뒤에 출간된 우주전쟁 대백과를 통해 당시에는 금기 시 되어 있었던 <요성 고라스>, <우주로부터의 메시지>, <에스파이> 그리고 <고지라> 시리즈 등의 일본 특촬물의 소개가 단편적으로 나마 이루어 졌고 그런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은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토호(東宝)나 토에이(東映), 쇼치쿠(松竹)의 특촬영화에 열광했습니다.

80년대 주한미군방송(당시 AFKN)에서는 금요일 심야에 Late Night Movie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종종 영어로 더빙된 일본 특촬영화가 그 코너를 통해 전파를 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81년 혹은 82년 경으로 기억되는데, <War in Space>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혹성대전쟁>을 본 적은 있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기억마저도 또렷하지 못한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혹성대전쟁>이 급작스럽게 DVD로 공수 되어 당시의 기억을 다시금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DVD에는 영화 본 편과 더불어 금성 대마함의 “헬 사령관” 역으로 출연했던 노배우 “무쓰미 고로(睦五朗)”와 자칭 SF오타쿠라 칭하는 여성 SF연구원 “오야마 노루마(尾山ノルマ)”의 2004년도 판 커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데, 1시간 30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 <혹성대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는 10분도 채 되지 않으며, “무쓰미 고로”가 과거에 출연했던 <고지라VS메카고지라>, <파이어 맨>, <마그마 대사>, <에스파이> 등 60, 70년대 특촬물에 대한 잡담만이 가득해 무지 지루했습니다. 특히 이제 70이 넘은 “무쓰미 고로”는 <혹성대전쟁>을 비롯 본인이 출연했던 특촬영화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 해 도대체 이거시 무슨 커멘터리일까? 라는 의구심마저 갖게 하더군요. 오직 기억 나는 것은 당시 17세였던 80년대 일본 드라마의 여왕 “아사노 유우코(浅野ゆう子)”의 긴 다리와 미모에 대한 것으로 “아사노 유우코”는 영화로 보는 것 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10배 이상 예쁘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멘트를 남발하더군요.

제작 년도는 1977년, 당시 미국에서는 “조지 루카스”감독의 <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등의 SF영화가 대 히트하였고 다음 해인 78년 여름 일본 공개를 앞두게 됩니다. 50년대부터 계속된 특촬 SF영화가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일본에서는 이러한 할리우드 SF영화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각 사의 최고의 스텝들을 모아 이에 대항하기 위한 특촬물을 제작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얼마 전 부천 판타스틱 영화에서 상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후카사쿠 킨지(深作欣二)”감독의 <우주로부터의 메시지(宇宙からのメッセージ)>였고 다른 한 편이 “후쿠다 쥰(福田純)”감독의 <혹성대전쟁>이었습니다. 결과는 두 편 모두 흥행에 참패하여 일본 SF특촬 영화의 종말을 고한 작품이 되었지만, 두 작품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매력은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원래 혹성대전쟁은 스타워즈의 일본 공개제목으로 예정되었으나 “조지 루카스”가 전 세계 공개명을 <스타워즈>로 통일하는 바람에 이쪽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77년 10월 준비고 단계에서 기획회의가 소집되었고 77년 12월 17일에 극장 공개되었습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급박하게 제작을 하다 보니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인지 제작사인 토호에서는 당시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스타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와 미우라 토모카즈(三浦友和)”공연의 <안개의 깃발(霧の旗)>과 동시 상영으로 흥행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여담이지만 “왕 자웨이”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국내판 비디오에 보면 주인공 “하지무”를 연기한 일본배우 “카네시로 다케시(金城武)”가 여자친구가 데미 무어를 닮았는데 내가 브루스 윌리스를 닮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다라는 자막이 있습니다. 용감한 의역으로 원문은 여자친구가 야마구치 모모에를 닮았고 자신이 미우라 토모카즈를 닮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졌다로, 미우라 토모카즈 이 나쁜 자식! 이라고 외치며 미드레벨 에스켈레이터를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있지요…)

극 중 무대는 1988년, 80년대 초부터 UFO에 의한 전파 방해가 시작되자 UN은 외계인 침공에 대비해 우주방위함 고우텐(轟天)의 건조를 시작하지만 UFO의 출현과 방해전파가 사라지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건조는 중단되고 고우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갑니다. 88년에 이르러 과거의 유성우와 전파방해가 기승을 부리자 UN은 고우텐의 설계자이자 함장인 "다키가와 마사토(滝川正人)”에게 건조 재개를 부탁하고 다키가와는 고우텐의 재건을 그다지 탐탁해 하지 않습니다.(뒤에 밝혀지는 내용이지만 고우텐에 탑재되는 에테르폭탄의 파괴력에 주저한 것이지요.)

이야기는 과거 고우텐의 승무원으로 함께 훈련 받았던 “미요시(三好)”, “무로이(室井)”, “후유키(冬木)”, “미카사(三笠)”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미요시”와 “무로이”는 다키가와 함장의 딸 “쥰(ジュン)”과 이상 야롯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고요. 금성에 전진기지를 둔 대마함의 본격적인 지구 공격이 시작되면서 과거의 고우텐 멤버들이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위치한 고우텐 지하기지에 집결합니다. 헬 파이터의 융단 폭격에 간발의 차이로 완성되어 날아오른 고우텐은 항공 폭뢰를 사용해 지구 상의 헬 파이터를 쓸어 버린 후 대마함과의 결전을 위해 금성으로 출격합니다.

63년 공개된 일본 특촬물의 대표작 <해저군함(海底軍艦)>의 고우텐의 오마쥬로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혹성대전쟁>은 핵무기와 특공자폭으로 얼룩진 과거 세계 대전의 어두운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어찌 보면 지구를 구하는 일본 군함이란 이미지에서 과거의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출연 배우 중 몇몇은 고인이 되었고 남아 있는 배우들도 60, 70을 넘긴 오래되고 곰삭은 영화이기도 하고 화려했던 일본 특촬 영화의 황혼기를 느낄 수 있는 조금은 서글픈 일작이기도 합니다.

지금 보면 얄팍한 이야기 구조나, 수준 이하의 특수촬영이 거시기 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시대를 그리고 그 시대정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살아있는 죽음이다.”라는 “장 꼭도”의 말처럼,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대로의 타임슬립,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1977년에 바라본 1988년의 미래는 2008년에 돌아 보는 과거 20세기의 기억으로 다시금 재조명해 보아도 나쁘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돌아 봅니다.
맨 위로

초속 5센티미터 /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2008/05/23 15:02 영화일기/DVD

사용자 삽입 이미지

(c)2007, 新海誠 / コミックス・ウェーブ・フィルム /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초속 5센티미터?
벚꽃의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뛰어난 영상미를/만을 자랑하는 일본의 신예 애니메이터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최신작 <초속 5 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는 이렇듯 대단히 감성적인 코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벚꽃의 꽃잎이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지는 모습에 빗대어 이루어 지지 않은 첫사랑의 아련함을 보여주지요. 그것이 감독이 이야기하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또 벚꽃에 대한 이야기 일 수 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건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싶습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가 아니라 초속 300m였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일본인에게는 벚꽃에 대한 어떤 형식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붉은색에 민감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물론 국가대표 축구팀과 그 서포터즈의 유니폼 색깔이 붉은색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이른바 레드컴플렉스라 불리우는 색깔론에 있어 붉은색이 가지는 상징성이 좀 물러지기는 했지만요.) 나의 벚꽃이야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돌아갑니다. 패색이 짙은 당시 대일본제국 해군은 중요 목표물 공격에 있어 화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어마 어마하고 무시 무시한 계획을 전개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카미카제(神風)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자살 특수 공격부대가 그것입니다. 특공대란 명칭은 당시의 일본에서는 자살공격대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이 조정하는 비행기나 폭탄, 어뢰를 사용하여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물론 조종사는 목표물과 같이 장렬히 전사하게 되고 당시에 일본군은 이것을 “산화한다”라고 명명했습니다.

산화(散花)… 그 뜻을 곰곰히 들여다 보자면 꽃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그들은 천황의 꽃이었고, 천황을 위해 그 몸을 부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당시 일본해군의 군가 중에는 산화한 전우여, 야스쿠니(신사)의 벚나무에 꽃으로 피어 다시 만나자라는 것도 있었습니다.(참으로 이상야롯한 것이 우리 가수 심수봉씨의 무궁화란 곡의 뉘앙스가 어째 만만치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 보자면 카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한 무기 중에 “오우카(桜花)”라는 인간폭탄이 있습니다. 로켓 엔진을 장착하고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앞 부분에 고성능 폭탄이 탑재되어 목표와 충돌할 경우 최대의 파괴력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진 인간 유도 방식의 자살 순항미사일로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이 오우카(벚꽃잎)의 속도는 초속 300m입니다.

나는 <초속 5센티미터>를 통해 전쟁, 죽음 그리고 애틋한 첫 사랑의 감성과 이 모든 것이 “산화”되어 버리는 것을 느낍니다. 영화의 감독이 가지는 벚꽃의 이미지가 또 그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어떠한 의미에서 구성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미지가 어디서 출발했는지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추측해 보고 싶습니다. 벚꽃과 꽃잎의 모양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시대를…

<초속 5센티미터>는 미완의 작품입니다. 물론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모음이란 부재를 달고 있기는 하나 이야기는 단편 구성이 아닌 아카리와 다카키의 일관성 있는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 6부 구성으로 준비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많은 부분들이 압축되고, 제거되었다는 뉘앙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주제가의 제목이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초속 5센티미터>의 매력적인 감성과 섬세한 묘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감성은 무색 무취의 수면을 떠도는 기름방울과도 같았습니다. 더욱이 <초속 5센티미터>라는 영화의 제목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의 속도는 초속 300m이기에 그 속도의 의미를 결코 사랑이야기에 붙이고 싶지 않기에…

참고로 일본의 국화는 벚꽃(桜花)이 아니라 국화(菊の花)입니다. 해 마다 난리 북새통을 떨고 있는 벚꽃놀이를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꽃의 이미지는 어쩐지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