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terfly Kiss 21



태양을 훔친 남자 / 太陽を盗んだ男

2009/12/23 12:56 영화일기/DVD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태양을 훔친 남자 太陽を盗んだ男 | 1979년, 일본
하세가와 카즈히코 長谷川和彦 감독

최근 국내에 공개된 애니메이션 영화 <에반게리욘 신극장판:파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破>에서 등장인물인 이부키 마야伊吹マヤ의 출근 장면에 본 작의 사운드 트랙인 YAMASHITA가 BGM으로 삽입되어 세간에 아주 약간의 관심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마이 신지相米慎二감독의 <태풍클럽台風クラブ>, 이와이 슌지岩井俊二감독의 <스왈로우테일スワロウテイル>과 더불어 최고의 일본 영화로 꼽아 두고 있던 영화로 상당히 초라한 필모의 소유자인 하세가와 카즈히코감독의 두 번째이자 (현재 까지) 마지막 영화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피폭국인 일본에서 원자폭탄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영화 이전에 몇 몇 형사 드라마에서 원자폭탄 제조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볼 수 있었지만 두 시간 반에 육박하는 극장판 영화의 전면에 원폭을 내세운 경우는 아마도 <태양을 훔친 남자>가 최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데뷔작인 <청춘의 살인자青春の殺人者>를 통해 근친살인에 대한 냉혹한 시각을 선보인 후(사실 청춘의 살인자는 위성 CS 채널인 neko채널에서 십수년 전에 본 적은 있지만 그리 집중해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할 입장은 못됩니다.) 원래는 무라키미 류村上龍의 소설인 <코인 록커 베이비스コインロッカー・ベイビーズ>의 영화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각본가 레너드 슈나이더Leonard Schrader의 초고 The Kid Who Robbed Japan을 본 후 차기작에 대한 방향을 선회하여 레너드 슈나이더(이 양반은 후에 윌리엄 허트William Hurt 주연의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로 당해 년도 오스카상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어 버렸지만서도요.)와 함께 <태양을 훔친 남자>를 작업하게 됩니다. 물론 영화화에 있어서 사회적인 반발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감독 자신도 태내피폭자임을 증명하는 사회보장 증서를 언론에 공개하는 등의 웃지 못할 뒷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여담이지만 무라카미 류의 <코인 록커 베이비스>는 발킬머Val Kilmer, 아사노 타다노부浅野忠信, 리브 타일러Liv Tyler 등의 캐스팅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화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원래 이 영화의 첫 제목은 <일본과 나日本と俺>였습니다. 두 번째 각본에서는 제목이 <웃는 원폭笑う原爆>이 되었다가 <플루토늄 러브プルトニウムラブ>라는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로 선회, 최후에 <일본을 훔친 남자日本を盗んだ男>를 거쳐 <태양을 훔친 남자>가 제목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이 제목 때문에 후에 말이 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흥행 실패의 원인이 <태양을 훔친 남자>라는 재미없을 것 같은 제목 때문이었다는 제작사 쪽의 비공식적인 견해였습니다. 더 아이러니 한 것은 같은 해 우리나라에서 <태양을 훔친 여자>라는 제목의 영화가 공개된 것이지요. 내용은 전혀 달랐지만 말입니다.

<태양을 훔침 남자>는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린 고독한 세대에 대한 냉소가 가득 합니다. 과거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를 그리워 하며 "그래도 그때는 굶지는 않았지..."라고 읆조리는 부류의 사람들,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무목적의 인류, 물질적으로 부족함을 모르지만 또한 삶의 근본적인 생태계마저 망각해 버린 그런 사람들의 모습들 말입니다. 도쿄의 한 중학교 물리교사가 자신의 독신 아파트에 플루토늄 정제 시설을 꾸리고 이바라키현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강탈한 액체 상태의 풀루토늄239를 기폭이 가능한 고체 플루토늄으로 정제하는데 성공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학교 교사 자체도 방사능에 피폭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지요. 원자폭탄 제조에 성공한 그는 정부를 협박해 작은 성과를 하나 얻어 냅니다. 다름 아닌 오후 9시 뉴스 시간에 맞추어 종료되는 프로야구 야간경기 중계를 끝까지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였지요. 당시 핵보유국(공식 6개국, 비공식 2개국)에 이어 9번 째로 핵을 보유했다는 이유에서 넘버9이란 이름으로 두 번째 요구를 고민하던 그는 결국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대정부 요구를 모집하게 되고(라디오 프로그램의 DJ의 이름은 사와이 레이코沢井零子로 그녀의 이름에서 제로라는 애칭으로 불리웁니다. 그녀는 9번 다음의 숫자로 노스텔직한 분위기를 자아내지요.) 결국 당시 마약사건으로 일본국내에 공연이 금지된 롤링스톤즈의 래일 공연을 2차 요구로 제시하지만 정부에서는 이 공연을 함정으로 넘버9을 잡을 계획을 꾸밉니다. 플로토늄 정제시설을 만들기 위해 얻어쓴 사채를 갚기 위해 5억엔의 현금마저 요구하는 넘버9, 그에게 원자폭탄은 무엇이든 얻어내기 위한 도구였지만 얻어내고자 하는 존재에 대한 의문은 그를 끝없는 나락에 떨어뜨립니다.(결국 롤링스톤즈는 90년도가 되어서야 일본에서 해금되었습니다.)
 
쥬리ジュリー라는 애칭으로 더욱 잘 알려진 가수 사와다 겐지沢田研二가 목적을 상실한채 방황하는 교사 키도 마고토城戸誠를, 그를 쫓는 악발이 형사 야마시타 마스오山下満州男(에반게리욘:파 에 삽입된 BGM은 바로 이 양반의 테마곡이죠.)에는 <인의 없는 싸움仁義なき戦い>시리즈의 불사신 조장 스가와라 분타菅原文太가 그리고 넘버 9을 사랑했던 여인 넘버 0에는 외모만을 보았을 때 일본 여배우 중 열손가락 안에 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케가미 키미코池上季実子가 그들의 영화경력을 아우러 최고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영화의 도입부 키도 마고토가 이끄는 중학교 수학여행 버스를 납치해서 학생들을 인질로 천황과의 면담을 요구하던 노인(일본의 패전을 인정하지 않고 카미카제 특공대의 군복차림으로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했던)의 에피소드를 살짝 끼워 놓아 대단히 구조적인 영화적 복선을 장치한 감독의 연출력 또한 예사롭지 않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2/23 12:56 2009/12/23 12:56
맨 위로

주말에 본 영화 #5

2009/09/30 13:37 영화일기/DVD
1. K-20 괴인이십면상.전 (K-20怪人二十面相.伝)
사용자 삽입 이미지
K-20 괴인 이십면상.전 K-20外人二十面相.伝 | 2008년, 일본
사토 시마코 佐藤嗣麻子 감독

"에도가와 란포 江戸川 亂步"의 소년 탐정단 시리즈에 등장하는 괴도 이십면상을 모티브로 쓰여진 "키타무라 소 北村想"의 소설 <완전판 괴인 이십면상.전>을 원작으로 한 <K-20 이십면상.전>은 제 2차 세계 대전을 회피한 제국주의 일본의 1949년 이란 가상의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간혹 일본의 소설 혹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설정에 조금 시니컬 해지기도 하는데, 결국 1949년에 대한민국이란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조선인은 모두 황국의 신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암울한 시대상이지요.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영화 <프리스티지>에도 등장하는 테슬러의 에너지 전송이란 환상의 기술을 둘러 싼 괴인 이십면상과 서커스단 출신의 "엔도 헤이키치 遠藤平吉"의 대결을 그린 영화는 의욕에 비해 조금은 어설픈 연출력으로 평이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스, 화려한 와이어 액션, "카네시로 다케시 金城武", "나카무라 토오루 仲村トオル", "마쓰 다카코 松たか子" 등의 화려한 출연진으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은 일작이었습니다.

2. 야타맨 (ヤッターマン)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야타맨 ヤッターマン | 2009년, 일본
미이케 다카시 三池崇史 감독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무지하게)웃었습니다. 영화 자체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였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그랬습니다. 원래 "미이케 다카시"가 황당무개한 스타일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이건 좀... 야타맨은 1977년에서 1979년에 걸쳐 제작, 방영된 다쓰노코 프로덕션의 TV 애니메이션으로 우리나라에는 70년대 후반에 "이겨라 승리호"란 제목을 달고 "날아라 태극호(타임보칸)"의 후속으로 방영되기도 했지요. 나는 당시 국민학생(참고로 초등학교란 곳은 다녀 본적이 없습니다.) "이겨라 승리호"를 보고 자란 세대로 원전과 비교를 하자면 분위기라던지 캐스팅에서 많이 무너져 버린 느낌을 받습니다. 야타맨 1호의 그 화려한 빤따롱 바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이며 야타맨 2호 아이쨩의 쌕쉬함은 온데 간데 없어졌고, 도론죠는 너무나 멍청해 져 버렸습니다. 특히 그 귀여운 야타멍의 디자인이 메카고지라가 되어 버린 것도 많이 아쉬웠고요. 글쎄요.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가 된다고 하는데, 원작을 보고 자란 40대 이상 분들에게는 조금 의아한 일작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원작을 보지 않았거나 후에 보신 분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3. 태풍클럽 (台風クラブ)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태풍클럽 台風クラブ | 1985년, 일본
소마이 신지 相米慎二 감독

もしも明日が 晴れならば
愛する人よ あの場所で
もしも明日が 晴れならば
愛する人よ そばに居て
今日の日よ さようなら
夢で会いましょう
そして心の窓辺に
灯りをともしましょう
もしも明日が 風ならば
愛する人よ 呼びに来て

이 영화도 다음에 다시 한번, 나중에 더 자세히...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9/30 13:37 2009/09/30 13:37
맨 위로

주말에 본 영화 #4

2009/09/08 11:24 영화일기/DVD
1. 252 생존자 있음 (252生存者あり)
사용자 삽입 이미지
252 생존자 있음 252生存者あり | 2008년, 일본
미즈다 노부오 水田伸生 감독

전형적인 미제 재난영화의 일본 현지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나 연출 방향은 미제 영화의 그것을 흉내내고 있지만 캐릭터들의 개성이 불분명하고 네러티브가 허술하며 임펙트도 그다지 돋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막판에 천사되기식의 억지춘양 마무리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더군요. 사실은 영화가 공개되기 하루 전에 공중파를 통해 방송되었던 특별극 형태의 드라마 <252 생존자 있음 EPISODE 0>를 보고 본 편 영화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 보았는데 기대에서 상당히 엇나간 영화를 보고 내심 당황스러웠습니다.

2. 20세기 소년 제2장 최후의 희망 (20世紀少年 第2章 最後の希望)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세기 소년 제2장 최후의 희망 20世紀少年 第2章 最後の希望 | 2009년, 일본
쓰쓰미 유키히코 堤幸彦 감독

원래 3부작의 한복판을 관통하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많은 제약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에서 시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내외에서 많은 팬들의 열성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 浦沢直樹"의 원작만화를 토대로 3부작 영화를 기획했던 것 자체가 상당한 모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 <20세기 소년>의 영화판은 원작자가 선보이는 여기저기서 뜯어온 모듈의 정교한 결합, 속칭 레고 시스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많은 내용을 할당된 시간 안에 우겨넣을 수 밖에 없었는지 그저 진도 나가기에 급급한 영화는 숨돌릴 틈도 생각할 여유도 제공하지 않습니다. 최종장은 2장의 DVD 발매일에 극장공개된 듯 한데, 최종작을 보고 나야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3. 돌입하라! 아사마 산장 사건 (突入せよ!あさま山荘事件)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돌입하라! 아사마 산장 사건 突入せよ!あさま山荘事件 | 2002년, 일본
하라다 마사토 原田眞人 감독

"하라다 마사토"감독은 군살을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고 질감있는 영화적 구조를 선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현대 일본이 가지고 있는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질타와 조롱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라다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은 전통적인 일본인의 외모와 관습 속에 대단히 양키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오랜 미국생활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영화는 1972년 나가노현 가루이자와 長野県軽井沢町에서 발생한 연합적군파 일당의 아사마 산장 사건의 실화를 기초로 진압작전에 투입된 도쿄 본청과 나가노현 지역 경시청간의 갈등과 살인적인 추위 속에 10일 동안 강행된 진압작전의 기록을 1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 속에 늘어 놓습니다. 때로는 비장하며 때로는 유머러스한 진압작전의 결론은 성공이었을까요? 실패였을까요? 만감이 교차했던 일작이었습니다.

4. 러브&팝 (ラブ&ポップ)
사용자 삽입 이미지
러브&팝 ラブ&ポップ | 1998년, 일본
안노 히데아키 庵野秀明 감독

1997年 7月 19日に吉井裕美が見た夢

あった事もないデブな男がとても高い山の中腹の小道で、看守に茸採りをさせられている。
何か修行の用でもあるし、罰のようでもある。
キノコは観た事も無い形でシュウマイに似ている。
非常の乾燥していて、表面に粉を吹いている。
2ヵ所でキノコを採取した後、デブの男は岩山に張り付いている蠍を見つける。
小型の赤と緑の蠍。
「こんな事やってられませんよ、刺されたら死にますよ。」
デブの男は看守にそう訴えるが、紺色の制服の看守は聞こえないふりをして
知らん顔している。

이 영화는 다음에 다시 한번 나중에 더 자세히...

5. 클라이머즈 하이 (クライマーズ.ハ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클라이머즈 하이 クライマーズ.ハイ | 2008년, 일본
하라다 마사토 原田眞人 감독

<돌입하라! 아사마 산장 사건>을 보고 "하라다 마사토"의 최신작을 한번 보자는 생각에 도전했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라다 마사토"의 영화를 그닥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초기에 보았던 <카미카제 택시 KAMIKAZE TAXI>, <바운스 고걸 バウンス ko GALS>의 강렬함을 잊지 못해 지금도 간간히 찾아 보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의 제목만 보고는 <클리프 행어>류의 산악 액션 혹은 아웃도어 스포츠영화 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영화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에 영화정보를 일부러 찾아보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처음 보게 되는 영화는 언제나 백지상태에서 시작하게 되지요. <클라이머즈 하이>역시 1985년 군마현 群馬県에서 발생한 일본항공 추락사고라는 실화를 발판으로 사건을 취재하는 가공의 신문사 키타칸토우 北関東의 기자 "유우키 카즈마사 悠木和雅"의 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썩 유쾌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미묘한 일작인 것은 분명합니다. 1985년의 시대적 분위기를 잘 살려낸 미술과 주인공 유우키를 연기한 "쓰쓰미 신이치 堤真一"의 연기가 돋보였던 준작이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9/08 11:24 2009/09/08 11:24
맨 위로

주말에 본 영화 #3

2009/08/20 18:33 영화일기/DVD
1. 마이크로 결사대 (Fantastic Voyage)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이크로 결사대 Fantastic Voyage | 1966년, 미국
리처드 플레이셔 Richard Fleischer 감독

지난 2006년 타계한 "리처드 플레이셔"감독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2007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를 통한 회고전으로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던 작품으로 당대 최고의 섹스심볼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는 "라켈 웰치"가 출연 합니다. <마이크로 결사대>는 사실 일본 공개 당시의 제목이고 원제목은 빤따스틱한 여정입니다. 70, 80년대 명화극장 등을 통해 수 차례에 걸쳐 국내에 방영되기도 했던 <마이크로 결사대>는 동서냉전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던 60년대 망명 도중 뇌에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동구권 과학자를 살리기 위해 관련 의사와 해군 장교들이 마이크로 크기로 축소된 잠수정을 타고 인체에 주입되어 종양을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특수효과와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린 잠수정 프로테우스호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전반적으로 평이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공개된지 4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까지도 SF영화 애호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셀 애니메이션과 기괴한 조명, 펄럭이는 휘장으로 연출한 인체의 모습 등 60년대의 열악한 특수효과 기술을 뛰어넘는 아이디어에 찬사를 보냅니다.

2.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 2002년, 미국
스티븐 스필버그 Steven Spielberg 감독


다수결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묘한 조소와 냉소를 보내고 있는 "필립 K 딕"의 단편 소설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스템이 총아라 할 수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 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흥행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특수효과를 사용한 미래 사회의 모습은 눈요기거리로 충분합니다. 기술을 맹신하며 소수의견을 묵살하고 범죄예방이란 인권침해의 소지가 만연한 미래사회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집니다.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블리치 바이패스란 현상 기법을 남용하여 화면 자체가 거칠고 말쑥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일작이었습니다.

3. 일본의 가장 긴 날 (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본의 가장 긴 날 日本のいちばん長い日 | 1967년, 일본
오카모토 키하치 岡本喜八 감독

사실 이 영화는 8.15 광복절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보았기 때문에 만감이 교차했다고 해야할까? 여하튼 그런 영화였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패색이 짙은 제국주의 일본의 마지막 24시간 (1945년 8월 14일 정오에서 1945년 8월 15일 정오까지)을 실록 형식으로 그린 <일본의 가장 긴 날>은 영화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붐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시이 마모루 押井守"나 "안노 히데아키 庵野秀明"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오카모토 키하치"감독은 대일본제국의 마지막 24시간을 섬세한 터치와 디테일을 곁들인 157분의 장대한 드라마로 선보입니다. 특히 학도병의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꾸겨 넣어진 교과서나 너덜 너덜 닳아 버린 짚신의 커트 등은 제국주의 시절 전쟁을 돌아보는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종전선언(일본은 공식적으로 패전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을 앞두고 "2천만, 아니 일본 남자의 절반만 특공 시킨다면 일본은 반드시 이긴다"라는 말을 서슴치 않는 각료, 종전반대, 본토결전을 선언하는 육군 청년 장교들의 8.15 궁성 반란 사건(물론 모조리 자살로 종지부를 찍지만서도), 종전 선언을 앞두고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육군대신 "아나미 고레치카 阿南惟幾"의 모습 보다는 지금까지도 문건의 문제성이 지적받고 있는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조서 800자"의 집필 과정에 더욱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저 너희 신민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소,중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 로 시작하는 종전조서의 내용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알고 있었던가 자문하게 됩니다.(흔히들 알고 있는 무조건적인 항복 이런 말은 종전조서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히로히토의 종전조서를 통해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미국의 신탁통치를 거쳐 대한민국으로 거듭난 우리는 과연 우리를 해방시킨 종전조서의 내용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요. 천황의 전쟁책임을 삭제하고 기만에 가득찬 이른바 옥음방송의 내용이 집필되는 과정에 보여지는 정치인들의 권모술수가 가희 예술의 경지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이런저런 내용 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었던 연합군의 시대적 판단 아래 받아들여진 종전조서가 종전 후 5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국주의 시절의 피해자였던 우리에게 고스란히 짐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한 없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8/20 18:33 2009/08/20 18:33
맨 위로

주말에 본 영화 #2

2009/08/03 13:54 영화일기/DVD
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2008년, 미국
데이빗 핀처 David Fincher 감독

감각적인 영상미를 구사하는 "데이빗 핀쳐"의 최신작입니다. <포레스트 검프>의 후속작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닮아 있더군요. 각본가 "에릭 로스"의 재주는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판타지 단편을 기초로 확고부동한 캐쉬카우라 할 수 있는 "브래드 피트"를 기용하고 온갖 현란한 특수효과를 곁들인 드라마는 3시간에 육박하는 긴 상영시간동안 관객을 끌어 당기기 위한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극의 사실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액자 구조가 거꾸로 현실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특히<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고 하는 우리말 제목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차라리 일본 공개 제목인 <벤자민 버튼의 기구한 인생>이 더욱 영화의 본질에 가깝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2. 로보캅 (ROBOCOP)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보캅 ROBOCOP | 1987년, 미국
폴 버호벤 Paul Verhoeven 감독

네델란드 출신의 "폴 버호벤"의 할리우드 데뷔작입니다. 고교생 시절에 허름한 동시상영 극장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어 다시 찾아 보았습니다.(그러고 보니 요즘은 동시상영이란 간판을 걸어 놓은 극장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드네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소재와 특수효과를 동원해 흥행에도 크게 성공을 거두었지만서도 영화 자체로서의 완성도는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의 메탈히어로 우주형사 시리즈(우주형사 갸방)에서 차용된 듯한 기갑경찰의 이미지와 테크놀로지 지상의 미래도시의 모습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피범벅, 오장육부 패스티벌 밖에 없는 감독의 손에서 이정도에 멈춰 버린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이제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썩 괜찮은 아이템이었는데 말입니다.

3. 인의 없는 싸움 (仁義なき戦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인의 없는 싸움 仁義なき戦い | 1973년, 일본
후카사쿠 킨지 深作欣二 감독

전후(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마초 감독이라고 일컬어지는 "후카사쿠 킨지"감독의 대히트 시리즈 <인의 없는 싸움>의 기념비적인 일작입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감독의 <대부>의 일본판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는 종전(공식적으로 일본은 패전이라는 말은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후 전선에서 복귀한 군인이 히로시마를 기점으로 한 야쿠자 조직의 일원으로 극도의 길을 걸으며 의리나 신념보다는 극단적인 자기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야쿠자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실록(다큐멘터리)형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술잔을 나눈(야쿠자 입문 동기) 형제들이 조직의 암투와 세력확장 속에서 서로를 배신하고 배신 당하며 죽어가는 모습을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히로노 소죠"(스가와라 분타)의 날카로운 시선과 염세적인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상대편인 도이파(土居組)의 조장을 암살하기 위해 비오는 거리에서 총탄을 날리는 장면은 "곽경택"이란 자가 만든 <친구>라는 영화에서도 채용 되었습니다. 원래 콘텐츠가 별로 없는 영화쟁이들이 이렇게 다른 영화 시퀀스를 대강 비벼버리는 경향이 좀 되는 것 같습니다. 실존하는 야쿠자 조장의 옥중 수기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는 가장 의리 없는 것이 깡패라는 친숙한 문구에 대한 실존적인 해석을 제공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8/03 13:54 2009/08/03 13:54
맨 위로

주말에 본 영화 #1

2009/07/20 16:46 영화일기/DVD
연일 계속 되는 장대비에 주말이라고 감히 나가 보지도 못하고 집에서 아이와 놀아주며 그간 DVD만 구해 놓고 보지 못했거나 예전에 보았는데 다시 돌아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을 찾아 보았습니다.

1. 해피 플라이트
(ハッピーフライト)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피 플라이트 ハッピーフライト | 2008년, 일본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감독


생각했던 것 처럼 유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항공기를 이용하면서 늘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던 생각, "왜 여자 분들은 저렇게 힘든 일을 학원까지 다녀가며 하고 싶어 할까? 웬만한 레스토랑 테이블 매니저도 이것 보다는 힘들지 않을텐데... 테이블 메니저 보다 CA(Cabin Attendant)가 더욱 가치가 있는 직업일까?"라는 생각에 큰 의문을 가지게 한 영화였다고나 할까요?
 
몇 년 전에 극장에 디지털 영사기를 설치하러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은 시원한 극장 안에서 두 시간 동안 재미있는 영화를 관람하면 그만이겠지만 영사실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상영 도중 플래터가 돌지 않아 필름이 쏫아져 내리기도 하고 화제 방지용 철판이 갑자기 떨어져 내리기도 하고, 두 시간... 관객들이 재미있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둡고 비좁은 영사실에서는 수 많은 영사기사분들이 좌충우돌하며 피를 토하는 것이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기 위해 승객들은 알지 못하는 극한의 상황을 헤쳐 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에 더욱 씁쓸 했습니다.

<워터보이즈>, <스윙걸즈> 그리고 <해피 플라이트>...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 일구어내는 세상에 대한 너무나도 긍정적인 시선의 드라마(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이 보이는)를 선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DVD의 화상적 특성은 정말로 좋았습니다.

2.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 2008년,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宮崎駿 감독


기본적으로는 "한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에 자신의 히트작인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トトロ>를 비벼 놓고 유럽이 되어 버린 일본과 유럽인이 되어 버린 일본인의 모습에서 자위하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영감님의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던 일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아니메(애니메이션과는 구별해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장하지도 않고 변이 하지도 않으면서 맹목적으로, 억압적으로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던 영화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가 새롭게 느껴지시나요?

여담이지만 이놈도 DVD의 화상적 특성이 가히 최고라 할 만 합니다. 아울러 "포뇨"의 정신없는 곱슬머리가 누군가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3.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劇場版 カウボーイビバップ 天国の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 천국의 문 劇場版 カウボーイビバップ 天国の扉 | 2001년, 일본
와타나베 신이치로 渡辺信一郎 감독


<카우보이 비밥>이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든 이유 중 하나가 세기말 적 분위기와 더불어 보헤미안적인 등장인물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나름 생각해 봅니다.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미제버터와도 같은 어떻게 보면 진부할 수 있을 미장센이 식상해 질 때 쯤 해서 등장한 극장판은 TV시리즈, 그 이상을 기대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조금 의아한 장편이 아니었닐까 합니다. 25분짜리 TV 에피소드를 길게 늘여 놓았을 뿐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진화한 것도 없는 어정쩡한 천국의 문은 스파이크의 죽음 뒤에 공허할 수 밖에 없었던 나같은 사람에게 어떠한 갈증도 해소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TV시리즈에서 더 이상이란 수식어가 필요치 않을 정도의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 것이 극장판에게 독이 되었던 것일 수 도 있겠습니다마는 그 어떠한 변주나 신선함이 결여된 비밥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4.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루타이의 여자 マルタイの女 | 1997년, 일본
이타미 주조 伊丹十三 감독

젊은 미망인이 궁극의 라멘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낸 <담포포 タンポポ>, 야쿠자의 탈세 사실을 주도 면밀하게 파해치는 독사같은 여성 세무원의 이야기를 담은 <마루사의 여자 マルサの女>, 민사개입폭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 변호사의 모습을 그린 <민폭의 여자 ミンボーの女>, 망해가는 슈퍼마켓을 되살려내는 여성 점장의 이야기인 <슈퍼의 여자 スーパーの女>. "이타미 주조"와 "미야모토 노부코 宮本信子" 부부 콤비의 ~여자 시리즈 그 마지막을 장식한 <마루타이의 여자>는 신흥 종교 집단에게 살해된 피해자를 목격한 여배우와 여배우를 증인석에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시청 증인보호대의 모습을 무대극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영화가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감독인 "이타미 주조"가 불륜 스캔들에 휩싸여 의문의 자살을 했기 때문에 그의 유작이 되어 버린 <마루타이의 여자>를 마지막으로 위트있고 휴머니즘 넘치는 "이타미 주조"의 ~여자 시리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양한 성격과 환경의 인물들과 이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 속에 희화된 부조리를 요목 조목 짚어내는 "이타미 주조"의 여인들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런지...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9/07/20 16:46 2009/07/20 16:46
맨 위로

혹성대전쟁 / 惑星大戦争

2008/05/26 18:12 영화일기/DVD
사용자 삽입 이미지

(c)1977, 福田純 / 東宝 / 惑星大戦争

<혹성대전쟁(惑星大戦争)>이 우리에게 소개된 것은 아마도 80년대 초 인기를 모았던 능력개발사의 로봇대백과를 통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일본의 케이분샤(勁文社) 대백과 시리즈를 카피해 짜집기 해놓은 능력개발 대백과 시리즈는 당시 아이들에게 꽤나 인기 있었던 아이템이었고, 그 중 첫 번째로 대 히트를 기록한 로봇 대백과의 권두에 미려한 컬러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된 <혹성대전쟁/금성대마함> 편은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와 비장한 결말로 나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간 많은 어린이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었지요. 그 뒤에 출간된 우주전쟁 대백과를 통해 당시에는 금기 시 되어 있었던 <요성 고라스>, <우주로부터의 메시지>, <에스파이> 그리고 <고지라> 시리즈 등의 일본 특촬물의 소개가 단편적으로 나마 이루어 졌고 그런 시대를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우리들은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토호(東宝)나 토에이(東映), 쇼치쿠(松竹)의 특촬영화에 열광했습니다.

80년대 주한미군방송(당시 AFKN)에서는 금요일 심야에 Late Night Movie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종종 영어로 더빙된 일본 특촬영화가 그 코너를 통해 전파를 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81년 혹은 82년 경으로 기억되는데, <War in Space>라는 제목으로 방영된 <혹성대전쟁>을 본 적은 있지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기억마저도 또렷하지 못한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혹성대전쟁>이 급작스럽게 DVD로 공수 되어 당시의 기억을 다시금 더듬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습니다.

DVD에는 영화 본 편과 더불어 금성 대마함의 “헬 사령관” 역으로 출연했던 노배우 “무쓰미 고로(睦五朗)”와 자칭 SF오타쿠라 칭하는 여성 SF연구원 “오야마 노루마(尾山ノルマ)”의 2004년도 판 커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는데, 1시간 30분에 달하는 상영 시간 동안 영화 <혹성대전쟁>에 관련된 이야기는 10분도 채 되지 않으며, “무쓰미 고로”가 과거에 출연했던 <고지라VS메카고지라>, <파이어 맨>, <마그마 대사>, <에스파이> 등 60, 70년대 특촬물에 대한 잡담만이 가득해 무지 지루했습니다. 특히 이제 70이 넘은 “무쓰미 고로”는 <혹성대전쟁>을 비롯 본인이 출연했던 특촬영화에 대해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 해 도대체 이거시 무슨 커멘터리일까? 라는 의구심마저 갖게 하더군요. 오직 기억 나는 것은 당시 17세였던 80년대 일본 드라마의 여왕 “아사노 유우코(浅野ゆう子)”의 긴 다리와 미모에 대한 것으로 “아사노 유우코”는 영화로 보는 것 보다 실제로 보는 것이 10배 이상 예쁘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멘트를 남발하더군요.

제작 년도는 1977년, 당시 미국에서는 “조지 루카스”감독의 <스타워즈>,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등의 SF영화가 대 히트하였고 다음 해인 78년 여름 일본 공개를 앞두게 됩니다. 50년대부터 계속된 특촬 SF영화가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던 일본에서는 이러한 할리우드 SF영화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각 사의 최고의 스텝들을 모아 이에 대항하기 위한 특촬물을 제작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얼마 전 부천 판타스틱 영화에서 상영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던 “후카사쿠 킨지(深作欣二)”감독의 <우주로부터의 메시지(宇宙からのメッセージ)>였고 다른 한 편이 “후쿠다 쥰(福田純)”감독의 <혹성대전쟁>이었습니다. 결과는 두 편 모두 흥행에 참패하여 일본 SF특촬 영화의 종말을 고한 작품이 되었지만, 두 작품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매력은 3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원래 혹성대전쟁은 스타워즈의 일본 공개제목으로 예정되었으나 “조지 루카스”가 전 세계 공개명을 <스타워즈>로 통일하는 바람에 이쪽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77년 10월 준비고 단계에서 기획회의가 소집되었고 77년 12월 17일에 극장 공개되었습니다. 워낙 짧은 시간에 급박하게 제작을 하다 보니 영화적 완성도가 떨어지게 된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인지 제작사인 토호에서는 당시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스타 “야마구치 모모에(山口百恵)”와 미우라 토모카즈(三浦友和)”공연의 <안개의 깃발(霧の旗)>과 동시 상영으로 흥행했지만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여담이지만 “왕 자웨이”감독의 영화 <중경삼림>의 국내판 비디오에 보면 주인공 “하지무”를 연기한 일본배우 “카네시로 다케시(金城武)”가 여자친구가 데미 무어를 닮았는데 내가 브루스 윌리스를 닮지 않아 헤어지게 되었다라는 자막이 있습니다. 용감한 의역으로 원문은 여자친구가 야마구치 모모에를 닮았고 자신이 미우라 토모카즈를 닮지 않았기 때문에 헤어졌다로, 미우라 토모카즈 이 나쁜 자식! 이라고 외치며 미드레벨 에스켈레이터를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있지요…)

극 중 무대는 1988년, 80년대 초부터 UFO에 의한 전파 방해가 시작되자 UN은 외계인 침공에 대비해 우주방위함 고우텐(轟天)의 건조를 시작하지만 UFO의 출현과 방해전파가 사라지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건조는 중단되고 고우텐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갑니다. 88년에 이르러 과거의 유성우와 전파방해가 기승을 부리자 UN은 고우텐의 설계자이자 함장인 "다키가와 마사토(滝川正人)”에게 건조 재개를 부탁하고 다키가와는 고우텐의 재건을 그다지 탐탁해 하지 않습니다.(뒤에 밝혀지는 내용이지만 고우텐에 탑재되는 에테르폭탄의 파괴력에 주저한 것이지요.)

이야기는 과거 고우텐의 승무원으로 함께 훈련 받았던 “미요시(三好)”, “무로이(室井)”, “후유키(冬木)”, “미카사(三笠)”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특히 “미요시”와 “무로이”는 다키가와 함장의 딸 “쥰(ジュン)”과 이상 야롯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고요. 금성에 전진기지를 둔 대마함의 본격적인 지구 공격이 시작되면서 과거의 고우텐 멤버들이 남태평양의 무인도에 위치한 고우텐 지하기지에 집결합니다. 헬 파이터의 융단 폭격에 간발의 차이로 완성되어 날아오른 고우텐은 항공 폭뢰를 사용해 지구 상의 헬 파이터를 쓸어 버린 후 대마함과의 결전을 위해 금성으로 출격합니다.

63년 공개된 일본 특촬물의 대표작 <해저군함(海底軍艦)>의 고우텐의 오마쥬로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戦艦ヤマト)>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혹성대전쟁>은 핵무기와 특공자폭으로 얼룩진 과거 세계 대전의 어두운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어찌 보면 지구를 구하는 일본 군함이란 이미지에서 과거의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출연 배우 중 몇몇은 고인이 되었고 남아 있는 배우들도 60, 70을 넘긴 오래되고 곰삭은 영화이기도 하고 화려했던 일본 특촬 영화의 황혼기를 느낄 수 있는 조금은 서글픈 일작이기도 합니다.

지금 보면 얄팍한 이야기 구조나, 수준 이하의 특수촬영이 거시기 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그 시대를 그리고 그 시대정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는 살아있는 죽음이다.”라는 “장 꼭도”의 말처럼,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그 시대로의 타임슬립,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1977년에 바라본 1988년의 미래는 2008년에 돌아 보는 과거 20세기의 기억으로 다시금 재조명해 보아도 나쁘지 않을까 그저 그렇게 돌아 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5/26 18:12 2008/05/26 18:12
맨 위로

초속 5센티미터 /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2008/05/23 15:02 영화일기/DVD

사용자 삽입 이미지

(c)2007, 新海誠 / コミックス・ウェーブ・フィルム / 秒速5センチメートル

초속 5센티미터?
벚꽃의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뛰어난 영상미를/만을 자랑하는 일본의 신예 애니메이터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최신작 <초속 5 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는 이렇듯 대단히 감성적인 코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벚꽃의 꽃잎이 바람에 날려 땅에 떨어지는 모습에 빗대어 이루어 지지 않은 첫사랑의 아련함을 보여주지요. 그것이 감독이 이야기하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또 벚꽃에 대한 이야기 일 수 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건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싶습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초속 5Cm가 아니라 초속 300m였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일본인에게는 벚꽃에 대한 어떤 형식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가 붉은색에 민감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물론 국가대표 축구팀과 그 서포터즈의 유니폼 색깔이 붉은색이기 때문에 요즘에는 이른바 레드컴플렉스라 불리우는 색깔론에 있어 붉은색이 가지는 상징성이 좀 물러지기는 했지만요.) 나의 벚꽃이야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로 돌아갑니다. 패색이 짙은 당시 대일본제국 해군은 중요 목표물 공격에 있어 화기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어마 어마하고 무시 무시한 계획을 전개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카미카제(神風)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자살 특수 공격부대가 그것입니다. 특공대란 명칭은 당시의 일본에서는 자살공격대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이 조정하는 비행기나 폭탄, 어뢰를 사용하여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물론 조종사는 목표물과 같이 장렬히 전사하게 되고 당시에 일본군은 이것을 “산화한다”라고 명명했습니다.

산화(散花)… 그 뜻을 곰곰히 들여다 보자면 꽃이 부서진다는 뜻으로 그들은 천황의 꽃이었고, 천황을 위해 그 몸을 부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당시 일본해군의 군가 중에는 산화한 전우여, 야스쿠니(신사)의 벚나무에 꽃으로 피어 다시 만나자라는 것도 있었습니다.(참으로 이상야롯한 것이 우리 가수 심수봉씨의 무궁화란 곡의 뉘앙스가 어째 만만치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금 더 진도를 나가 보자면 카미카제 특공대가 사용한 무기 중에 “오우카(桜花)”라는 인간폭탄이 있습니다. 로켓 엔진을 장착하고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앞 부분에 고성능 폭탄이 탑재되어 목표와 충돌할 경우 최대의 파괴력을 얻을 수 있게 만들어진 인간 유도 방식의 자살 순항미사일로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이 오우카(벚꽃잎)의 속도는 초속 300m입니다.

나는 <초속 5센티미터>를 통해 전쟁, 죽음 그리고 애틋한 첫 사랑의 감성과 이 모든 것이 “산화”되어 버리는 것을 느낍니다. 영화의 감독이 가지는 벚꽃의 이미지가 또 그 꽃잎이 떨어지는 속도가 어떠한 의미에서 구성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미지가 어디서 출발했는지에 대해 어설프게나마 추측해 보고 싶습니다. 벚꽃과 꽃잎의 모양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시대를…

<초속 5센티미터>는 미완의 작품입니다. 물론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모음이란 부재를 달고 있기는 하나 이야기는 단편 구성이 아닌 아카리와 다카키의 일관성 있는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 6부 구성으로 준비되었다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많은 부분들이 압축되고, 제거되었다는 뉘앙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주제가의 제목이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초속 5센티미터>의 매력적인 감성과 섬세한 묘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감성은 무색 무취의 수면을 떠도는 기름방울과도 같았습니다. 더욱이 <초속 5센티미터>라는 영화의 제목에도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의 속도는 초속 300m이기에 그 속도의 의미를 결코 사랑이야기에 붙이고 싶지 않기에…

참고로 일본의 국화는 벚꽃(桜花)이 아니라 국화(菊の花)입니다. 해 마다 난리 북새통을 떨고 있는 벚꽃놀이를 반대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꽃의 이미지는 어쩐지 우울하게 느껴집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5/23 15:02 2008/05/23 15:02
맨 위로

우주형사 갸방 / 宇宙刑事ギャバン

2008/03/17 15:20 영화일기/DVD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여 년전 도쿄의 한 고서점에서 50엔 주고 산 <판타스틱 컬렉션 우주형사 갸방>

記憶
통행금지가 사라지고 프로야구가 출범했던 1982년, 이 때 즈음해서 태어난 아기들이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버릴 정도의 아득했던 시절에 나는 몇 가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사교육 열풍이다. 조기유학이다 해서 영어와 입시에 관련된 학원이 많아졌지만 당시에는 주산/부기/속독학원이 일반화되어 있었고, 이런 학원들은 더 많은 원생들을 모집하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으로 주말 마다 주변 국민학교(난 초등학교란 곳을 다녀본 적이 없습니다.)학생들을 모아 놓고 만화영화를 상영해 주며 학원을 홍보하던 그런 시대의 기억들 말입니다. 당시에 가정용 VCR이란 것은 주위에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생소했고, 매주 방영되는 만화영화는 방영 당일 보지 못하면 재방송 외에는 볼 방법이 없었습니다. 특히 TV에서 방영해 주지 않는 일본 만화영화나 특촬 전대물은 주산학원이 아니면 보기 힘든 희소성이 높은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이곳 저곳에 새로운 프로그램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으면 그 쪽의 학원으로 우르르 몰려가기도 했었습니다. 대부분이 8밀리(가정용 8밀리 비디오가 아닌 8밀리 필름) 영사기로 상영된 만화영화들은 우리말 더빙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국 혹은 일본에서 직수입하여 원어로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단연 인기 있었던 것은 <그레이트 마징가>와 <가면 라이다>시리즈, 특히 지금 이야기하려 하는 <우주형사 갸방>에도 게스트로 출연한 “미야우치 히로시(宮内洋)”주연의 <가면 라이다 V3>는 항상 화제를 몰고 다녔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주산학원에 VCR이라는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흔히들 익숙한 VHS방식이 아닌 지금은 사라져 버린 BETA방식으로 프로그램은 일본에서 녹화해 온 어린이 프로그램이 몇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 처음 보게 된 <우주형사 갸방>은 나에게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었고 지금에서야 우주형사 삼부작, 혹은 그 뒤로도 계속되어진 메탈 히어로 시리즈의 기념비적인 첫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진 <로보캅>의 원형으로 더욱 잘 알려진 갸방의 컴벳슈트는 어린 시절 나만의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두 가지 종류의 어린이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고단샤(講談社)에서 발행되는 테레비매거진(テレビマガジン)이란 잡지였고 또 하나는 토쿠마쇼텐(徳間書店)의 테레비랜드(テレビランド)란 아동용 TV프로그램 잡지였습니다. 당시 한달 용돈이 3,000원으로 잡지 가격이 한 권에 2,000원이었기 때문에 매달 테레비매거진과 테레비랜드를 격월로 구입할 수 밖에 없었지요. 당시엔 뉴타입 같은 잡지는 창간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아니메쥬나 아니메디아, 디 아니메 같은 애니메이션 전문지는 컬러화보 보다는 기사가 더 많아 선호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두 잡지에는 공히 만화판 <우주형사 갸방>이 연재 중이었고, 테레비랜드쪽의 연재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에(반면 테레비매거진쪽은 부록이 화려해서) 주산학원에서 친구들이 알지 못하는 갸방의 뒷 이야기(갸방 전용 탱크 갸비온의 스펙이나 갸방의 약점 등)를 자랑 삼아 이야기 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82년도 테레비매거진 부록인 <우주형사 갸방>은하경찰 수첩과 테레비랜드 부록인 <우주형사 갸방> 벰괴수 해부 북

감자주말농장
매달 3,000원의 용돈으로 2,000원의 일본 잡지를 구독하던 소년은 이제 나이를 먹어 그 때의 아버지 정도의 나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돌이켜 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훌륭하진 않지만 그래도 잘 버텨왔다는 느낌입니다. 25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 버린 작년 가을, 감자농장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과거의 그 <우주형사 갸방>의 DVD가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총 44화, 8장의 DVD로 구성된 박스세트는 소년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아련한 <우주형사 갸방>의 기억을 명확하고 실존적으로 되살려 내고야 말았습니다. 어릴 적엔 잘 몰랐는데, 지금에 다시 보니 <우주형사 갸방>은 정형적이라 할 정도로 그 포맷이 균일했습니다. 크래셔들과의 전투->증착(변신)->벰괴수 혹은 더블러와의 대결->마공 공간진입->갸방 블레이드 출현->레이저 블레이드로 업그레이드->갸방 다이내믹으로 마무리 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시청자에게 반복 주입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중독증세를 보이기 까지 합니다. 물론 사이바리안, 갸비온, 초차원 고속기 도루기란 등의 메카 액션이 가미되기도 하고 아버지 “보이서”를 찾는 “갸방”의 드라마적 에피소드가 어린이 대상 특촬 액션물의 단조로움을 어느 정도 완화해 주기는 하지만 서도요.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문제의 43화 <재회>편에서 보여주었던 감동적인 드라마와 뛰어난 연기력, 그리고 44화/최종화 <돈 호러의 목>으로 이어지는 차기 우주형사 샤리방의 등장이 압권이기는 하지만 나는 어째서 인지 제 18화 <공주님 컨테스트, 어기여차 용궁성>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름 특집으로 구성된 18화는 일본의 “우라시마 타로의 전설”(우리가 볼 때는 별주부전과 신선놀음이야기를 합쳐 놓은 듯 한)을 기초로 용궁의 보물을 차지하려는 우주범죄조직 마크의 음모를 그려내고 있는데, 나에게 있어서 그런 에피소드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해변을 중심으로 비키니 언늬들이 많이 많이 등장하며 특히 18화에는 더블걸(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마크의 수성인)역으로 전설의 AV배우 “히라세 리에(平瀬りえ)”가 게스트 출연하는 것에(그것도 비키니 차림으로) 열광하게 되었습니다. “히라세 리에”는 홋카이도 유바리 출신으로 극진 가라데와 JAC(Japan Action Club)의 일원으로 특촬물에 간혹 얼굴을 내밀기도 한 모양입니다. 원래 더블 걸 역의 “아즈마 마리코(東まり子)”의 그 아흐트랄한 외모만 계속 보다가 18화의 더블 걸이 너무 인상적 이어서 그녀의 뒷조사를 해보았는데, 지금은 잠적해서 현재의 모습을 찾을 순 없었습니다. 주로 성인영화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하고 볼륨감있는 몸매가 압권이었는데 말입니다. 현재 활동은 하고 있지 않지만 오십을 바라보고 있을 나이로 어디에선가 살아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할 때 세월의 잔인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 18화 <공주님 컨테스트, 어기여차 용궁성>에 출연한 "히라세 리에"

<우주형사 갸방>은 해외에도 팬이 많습니다. 프랑스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고 태국이나 미국에도 많은 팬이 존재합니다. 영화감독 “쿠엔틴 티란티노”는 <우주형사 갸방>과 <우주형사 갸방>의 주인공역으로 출연한 “오바 겐지(大葉健二)”의 차기작 <어둠의 군단>시리즈의 팬으로 그의 영화 <킬빌 Vol.1>에 갸방역이 “오바 겐지”와 그의 아버지 보이서역의 “치바 신이치”가 출연합니다.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우마 서먼”에게 전설의 일본도를 만들어 주는 “핫토리 한조”와 그의 조수 “시로”가 바로 보이서역의 “치바 신이치”, 갸방역의 “오바 겐지”였습니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도 <벡터맨>으로 대변되는 토종 특촬 전대물이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고렌인저>, <베틀피버>, <덴지맨>, <선발칸>, <고글V>, <가면 라이더 V3>, <가면 라이더 슈퍼원>, <가면 라이더 제트크로스>는 나의 어린시절의 우상이었고 꿈이었습니다. <우주형사 갸방>또한 그렇습니다. 일본문화가 철저하게 금지되었던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특촬 히어로물을 보면서 자랄 수 밖에 없었던 세대로서 이제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메이드 인 제펜이었다는 것을 허물 없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시절이 온 것에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너무나, 너무나 늦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우주형사 갸방>관련문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3/17 15:20 2008/03/17 15:20
맨 위로

살아있는 지구 / planet earth

2008/03/11 12:05 영화일기/BD

사용자 삽입 이미지

(c)2006, Alastair Fothergill / BBC, Discovery Channel, NHK / KBS Media

최근들어 디지털 방송이라던지 HD(High Definition)라는 말이 주위에서 많이 들려 옵니다. NTSC방식의 흑백 방송 시절을 거쳐 컬러 방송으로 스테레오/음성다중 방송, 문자방송, 데이터 방송으로 진화한 방송기술이 이제는 완전한 디지털 고해상도 방송으로 자리매김을 하기 시작한 21세기, 바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지요. 비록 현재 방송되고 있는 규격이 이른바 Full HD라 일컬어지는 1080p/24f 규격이 아닌 1080i/60Hz이기 때문에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서도요.

가정용 영상매체로 자리매김했던 VHS나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 호평받았던 고화질 포맷 SVHS혹은 LD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디지털 매체인 DVD가 대체하기 시작한 후 10년, 이제는 디지털 HD방송에 발맞추어 HD급 영상과 음향을 수록한 차세대 매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른바 "블루레이(Blu-ray)", "HD-DVD"로 이야기 되는 차세대 영상 매체의 출현은 올 1, 2월을 분기로 "블루레이" 쪽으로 기울어져 버렸고 디지털 전송 규격인 HDMI 1.3b 및 블루레이 타이틀 저작 규격인 BD-JAVA, BD-Profile 2.0(BD Live)등의 새로운 표준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 아직은 블루레이 시스템에 발을 담구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어찌되었건, 살짝 업계에 관련된 나는 엉겁결에 블루레이 시스템을 구축하고 말았습니다. 원래는 기존에 사용하던 DVD플레이어가 이제 천수를 다하여 교체를 고려하였고 480p의 DVD영상을 1080p의 HD영상으로 업스케일링 할 수 있는 플레이어를 찾던 중, 주위의 뻠뿌에 의해 BD플레이어를 구입하게 된 것이지만 서도요. 잡지사의 리뷰 관계로 해서 이십여장 가까운 블루레이 타이틀이 거쳐갔지만 정작 내가 구입한 타이틀은 단 한개에 불과 합니다. KBS를 통해 방영된 BBC/NHK 합작의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는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구입했다고 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고 초도 발매량 2천 카피가 모두 팔려나가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북미에서는 DVD로만 250만장 이상이 판매된 메가 히트 시리즈로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블루레이 타이틀로 우리나라에서 발매되었고 전세계 최초로 음향을 돌비 디지털 5.1로 리마스터링 하였으며 오리지널 내레이션과 더불어 TV시리즈 <X-Files>의 "폭스 멀더"역으로 유명한 성우 "이규화"씨의 우리말 내레이션이 포함된 명실공히 세계최고, 국내최초의 블루레이 타이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살아있는 지구가 사야하는 지구, 이미 사버린 지구 등의 우수갯소리로 불리워 지는 것이 조금은 경망스럽게 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4장의 블루레이 디스크 패키지로 11편의 에피소드, 총 9시간에 달하는 장대한 HD영상이 수록되어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윈도우즈 배경화면을 보는 것 처럼 맑고 선명하기 때문에 장대한 지구의 생태계를 감상하며 큰 감동을 얻을 수 도 있습니다.

사실 그 간 나의 블루레이 플레이어에 문제가 있어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상영이 시작된 후 25분이 지나면 화면과 음향이 심하게 끊어지기 때문에 제대로 볼 수 가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플레이어를 교환받고(이 S사와 나 사이에 무슨 마가 끼었는지, 매번 구입하는 제품마다 한번에 깔끔하게 마무리 되는 적이 없네요.) 정상 플레이 환경이 마련되고 나서, 퇴근 후 한편 씩 느긋하게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편의 에피소드를 감상하는 시간은 50분, 이 50분 사이에 너무나도 환상적인 장면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살아있는 지구>가 그리도 성공한 이유가 아닐런지요. 시베리아에 살다가 겨울에 한반도로 날아오는 30만 마리의 가창오리의 군집, 백상아리의 공격을 피해 목숨을 걸고 최고 속력으로 질주하는 수백 마리의 물개들, 해저 3,000미터에 밀려온 향유고래의 시체를 뜯어 먹는 심해 갑각류, 적을 만나면 푸른 불빛을 내뿜는 흡혈 오징어, 지하로 수백 킬로나 뻣어 있는 지하/해저 동굴에서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곳의 경계가 선열하게 그려지는 것을 보면 좁은 사무실에 앉아 더 좁은 모니터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나의 답답함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가혹한 촬영 환경 때문에 화질의 편차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과연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얼마나 힘든 작업을 했으며 그 화면을 마스터링 하는데 또 얼마나 고된 과정이 있었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지구 온난화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 가는 북극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아있는 지구>가 아닌 이제 <죽어가는 지구>의 느낌을 받는 것이 나만의 편견과 아집일지 그런 생각에 조금은 우울해져 버립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2008/03/11 12:05 2008/03/11 12:05
맨 위로